산업·노동·지역 포괄한 방안 논의
“하청노동 문제 해결 못하면
수주 늘어도 인력난 해소 못해”
“조선소 지역소멸 막기 위한
지역 노사정 대화 필요”
탄소중립은 위기이자 기회
신규고용 창출·경쟁력 확보
적응 못하면 글로벌 시장서 도태
“한화, 파업 손배소송 철회하면 좋을듯”
“노조가 한화 인수 도와야” 제안도
지난 7월21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제1도크에서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임금인상과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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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은 ‘1㎥ 철제 구조물에 갇힌 노동자’로 상징되는 조선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협상 타결로 가까스로 파국은 면했지만 여전히 대우조선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원청-하청 노동의 기형적인 임금체계에서부터 지역소멸 위기, 그리고 탄소중립 문제까지 만만찮은 과제가 놓여 있다. 대우조선뿐만이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회사들은 지금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조선업은 그동안 한국의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다. 1998년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전국이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 지역은 ‘개가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맞았다. 원-달러 가치가 고공행진을 할수록 수출 위주의 조선업은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호황은 201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이 기간 거제시의 생산직 정규직 평균 소득은 7000만원 이상이었다. 특근을 하지 않아도 연봉 5000만원 이상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거제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을 비롯해 다른 중견 조선회사가 있는 지역들도 잘나갔다.
하지만 곧이어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다. 조선업은 전방 수요산업인 해운업의 경기에 영향을 받아 호황 후 장기불황을 겪는 특성이 있다. 2013년에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이듬해 삼성중공업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조선 3사(현대, 삼성, 대우조선)는 해양플랜트 분야에 진출했다. 이전까지 해양 부문 비중은 전체 제품군 중 10%에 불과했으나, 2013~2014년 동안 70%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해상 원유시추가 수지타산을 못 맞추게 되자 해양플랜트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특히 대우조선은 부실 규모가 커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그리고 감자까지 해야 했다. 국내 조선업은 절정기였던 2015년 20만~25만명을 고용했으나 최근에는 9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선업은 다시 호황기를 맞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황은 2016년 침체기를 거쳐 2021년부터 회복되고 있다. 2021년 세계 선박 발주량은 5173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전년 대비 108% 증가했다. 선가도 많이 올라 2020년 말 이후 클라크슨(영국의 세계 최대 해운 시황 분석 및 선박 매매 회사) 신조선가(배를 새로 만들 때 지불하는 가격) 지수가 29%나 올랐다.
조선 3사를 비롯해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도 크게 늘었다. 대형 컨테이너선과 엘엔지선 등의 점유율을 높이며 2021년 1767만CGT(전년 대비 98.7% 증가)를 수주했다. 2022년 8월까지 누적 수주는 1192만CGT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필요 수주량인 연 1000만~1300만CGT는 달성한 상태다.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건조량도 2021년에 전년 대비 19% 증가한 1051만CGT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820만CGT로 예상되지만, 2023년부터 다시 1000만CGT 이상으로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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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국내 조선업의 미래가 밝지 않은 것은 원청-하청의 이중적 노동구조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은 사내하청 노동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잘나가던 때인 2014~2015년 조선 3사는 각각 6000~7000명의 직영 정규직 노동자와 3만~4만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 생산공정의 80%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맡아온 것이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22년차 용접공 시급이 1만350원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을 겨우 넘기는 액수다. 더욱이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하청노동자들이 주로 한다. 이러한 차별은 조선업의 숙련된 인력들을 다른 업종으로 내몰고 있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리 선박 수주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숙련된 인력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조선업의 미래가 밝지 않은 이유다.
지난 14일 한겨레신문과 금속노조가 공동 주최한 ‘산업·노동·지역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토론회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조선업의 위기는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와 지역소멸 문제를 함께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조선업의 노동시장은 크게 원청과 하청으로 나뉘고, 하청에서 다시 1~2차 하청 상용직, 물량팀, 아웃소싱 노동자 등으로 분리된다. 양 교수는 “국내 제조업 노동시장은 분단된 구조이기 때문에 하청노동자가 원청으로 못 넘어가고, 따라서 저임금에서 고임금으로도 못 넘어간다. 조선업은 특히 아웃소싱으로 한 단계 더 내려간다. 이로 인해 고용 불안정이 더 심해지고 임금구조도 더 복잡해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구조로 인해 “20년을 일한 숙련된 인력이 200만원밖에 받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조선업은 또 생산직의 99%, 사무기술직의 90%가 남성일 정도로 여성에게 배타적이다. 이에 따라 “남성 생계-여성 가사 형태의 산업 가부장제 구조”를 띠고 있다. 남성 가장의 벌이와 고용에 문제가 생기면 그 도시는 시골처럼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따라서 맞벌이가 가능하도록 여성을 노동시장에 유입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조선업의 산업·노동·지역 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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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교수는 “조선업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현장에서 이뤄지는 숙련이 중요한 산업”이라며 “엔지니어들은 생산직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과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면 조선업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조선업의 전환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북유럽식과 일본식은 모두 생산(완성품)의 비중을 축소하는 방식이다. 양 교수는 기본설계 능력을 갖추더라도 생산을 줄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소(shipyard)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숙련 생산직 노동자들을 확보해야 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선업은 제조업 가운데 가장 고용효과가 크고 경쟁력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끌고 가야 할 산업”이라며 “시황주기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그에 따른 경영 전략, 정책을 수립해 각종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 선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 경기후퇴, 금리상승 등의 영향으로 일시적인 부진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3년치 일감을 확보했기 때문에 국내 조선업계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선임연구원은 국내 재벌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하기로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국내 조선업의 위기는 호황 때 돈을 많이 벌기만 하고 이후에 다가올 불황에 대비하지 못한 경영의 후진성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며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조선이 특히 심했는데,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그는 “조선업 경험이 없는 한화가 초기의 혼란에서 빨리 벗어나 경영이 안정될 수 있도록 노조가 너무 강경하게 나가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국내 조선 3사의 지나친 저가수주 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고 그 부담이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업도 탄소중립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제무역의 90%는 바다를 통해 이뤄지는데, 배를 이용한 해상 운송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해운으로 인한 탄소 배출은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한다. 해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방치하면 2050년에 17%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해운업의 탄소중립을 압박하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해운업의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녹색항로를 들고나왔다. 녹색항로는 특정 항로를 지정해 이 항로를 통과하는 선박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거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연료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선박 운항뿐 아니라 항만에서 하역작업을 할 때도 적용한다. 녹색항로가 보편화되면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선박은 해외 선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조선회사들은 수소와 암모니아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대체 연료를 개발하고 있다. 해운업의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는 경영적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 문제와 근로 조건 등의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노동계는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를 기대와 걱정이 섞인 눈빛으로 보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한화의 기존 노사관계를 볼 때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화가 앞서 대우조선 경영진이 하청노조에 청구한 파업에 따른 손배소송을 모두 취하하는 전향적인 조처를 취한다면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대기업 임원을 지낸 김경식 고철연구소장은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한 뒤 초기에 경영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조가 도와주는 건 어떤가. 노조가 초기에 너무 태클을 세게 걸지 말고 큰 틀에서 합의한 뒤 그다음에 노조로서 할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조선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지역사회의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용운 전 거제시 의원은 “조선업 불황 때 거제에는 이를 대신할 산업이 없다. 지역에서 이를 해소할 만한 능력이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에 지역노사위원회 같은 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녹취 노영준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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