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이고 있는 8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이 뿌옇다.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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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 첫 주말인 7~8일, 전국이 황사와 미세먼지에 갇혔다. 환경부는 8일 오전 6시부터 서울·인천·경기·대구·경북·충북·충남·세종·강원 영서 등 9개 시·도에 초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했다. 수도권 일대를 포함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졌다.
이 같은 고농도의 미세먼지는 환경미화원이나 배달업 종사자, 물류·운송, 건설 노동자 등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A씨(68)는 이날 오전 6시부터 거리를 청소했다. 휴식 시간을 제하면 하루 6시간을 내리 밖에서 일하는 그는 KF(미세먼지 등 유해물질 입자 차단 성능 지수) 마스크가 아닌 일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A씨는 “회사에서 주는 게 이것이라 끼는 것”이라며 “주는대로 받아야지 어쩌겠나”라고 말했다.
2시간 일하고 1시간 남짓 쉬는 공간에 씻을 수 있는 시설은 없다. A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침침하다. 일 끝나면 샤워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해뜨기 전부터 일했는데 그때는 안개가 자욱이 낀 것처럼 (미세먼지가) 더 심했다”고 했다.
서울에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서 취재진과 만난 배달 라이더 한상원씨. 하루에 8시간 밖에서 일하는 그는 마스크 대신 워머를 코 밑까지 내려 썼다.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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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아프고 눈이 따갑습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많다고 일을 안 나올 수는 없지 않나요. 배달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의 한 골목에 주차한 채 배차 콜을 기다리고 있던 배달 라이더 한상원씨(49)는 추위와 먼지를 막는 임시방편으로 넥워머를 택했다. 마스크를 끼면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아 업무에 지장이 생겨서다.
쿠팡 배송기사 B씨는 일반 마스크를 쓴 상태로 상점들에 물품을 배송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B씨는 “회사에서 예전부터 (일반)마스크를 비치해놓았으나 일하다보면 마스크 안에 수분이 차서 따로 산 마스크를 여러 번 갈아 끼운다”고 말했다. 그는 “물량 때문에 업무량 단축은 어려울 것 같고, 봄처럼 황사가 심할 때 눈이 따가워서 회사에서 고글이라도 줬으면 좋겠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은 ‘미세먼지가 많으니 운행에 주의하라’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라이더들에게 보냈다. 현장의 라이더들은 지침 하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나 혹한, 폭염 등 날씨에 따른 위험수당을 신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통상 하루 10시간가량을 실외에서 일하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도 미세먼지에는 속수무책이다.
서울 중구의 한 공사장에서는 몇몇 인부들이 마스크 없이 맨 얼굴로 비계에 올라 선 채 작업 중이었다. 현장 관리감독자는 기자와 만나 “공사 일정이 잡혀 있으니 그 기간 안에 하려면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양근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노안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세먼지가 심하면 보통 마스크를 지급하는 정도이고 현장 작업을 중지하지는 않는다”며 “물을 뿌리기도 하는데 겨울에는 얼어버려 이마저도 못한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공사 현장에 게시된 미세먼지 농도 현황판. 8일 오전 10시25분 기준 미세먼지 농도가 153㎍/㎥, 초미세먼지 농도가 54㎍/㎥를 기록했다. 이날 서울 전역에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졌다. 박하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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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한 종합병원 주차 관리 요원 전모씨(47)는 컨테이너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하루 12시간 주차 요금을 정산하는 일을 하느라 창문을 닫을 수 없다. 전씨 업무는 하청에 하청으로 이뤄지는데, 그를 고용한 업체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아도 마스크 지급이나 업무량 감축 등의 조치는 없다. 선천적으로 폐가 약해 매일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다는 전씨는 지난 7일 KF80 마스크를 세 차례나 갈아 끼웠다. 전씨는 “그전에도 다른 병원 두 곳에서 일했는데 마스크를 주는 곳은 없었다”고 했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백화점 앞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 이모씨(19) 역시 자신이 챙겨 온 일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미세먼지 주의보·경보에 따른 야외 노동자 보호조치 가이드라인을 보면,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면 사업주는 노동자에 대해 미세먼지 농도 정보 제공, 마스크 지급 및 착용, 민감군(폐·심장질환자, 고령자 등)에 대한 중노동 단축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미세먼지 경보가 내려지면 이에 더해 적절한 휴식, 일반 노동자의 중노동 일정 조정 또는 단축이 이뤄져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주가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하는 조건에 미세먼지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권고에 그치는 수준인 데다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노동부가 (사업장을) 감독하는 절차도 없고 이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무슨 대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실태 조사를 하고 나서 노동자 근무 시간 조정 등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노동부가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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