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 넌’ ‘1899′ ‘웨스트 월드’ 등 OTT마다 완결 않고 끝난 시리즈 수두룩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영화·시리즈도 많아… 콘텐츠 홍수 시대의 역설
대니얼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첫 작품이었던 '007 카지노 로얄'. /소니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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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워리어 넌을 구하라’(#SaveWarriorNun)고 쓴 광고가 등장했다. ‘워리어 넌’은 넷플릭스의 초자연 호러 액션 시리즈. 시즌3를 제작하지 않겠다는 공식 발표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같은 해시태그로 온라인 시위를 벌여온 팬들이 온라인 공간을 벗어나 현실 세계에 진출한 것이다. 팬들은 로스앤젤레스 넷플릭스 지사 앞에도 같은 내용의 항의 광고판을 세웠고, 애플tv+와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 다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이 시리즈를 인수해 다음 시즌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도 내고 있다.
넷플릭스의 공동 CEO 테드 사란도스는 지난 1월 “우리는 성공적 시리즈를 취소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애정하는 시리즈가 완결을 보지 못한 채 중단되는 모습을 지켜 보는 팬들의 상실감은 크다. 작년에만 ‘1899′와 ‘레지던트 이블’(넷플릭스), ‘웨스트 월드’(HBO),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파라마운트+) 등의 추가 시즌 제작이 취소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들은 갈수록 더 중도 포기 프로젝트들로 가득한 거대한 무덤이 돼 가고 있다”고 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등장한 '워리어 넌을 구하라' 광고. 넷플릭스가 초자연 호러 시리즈 '워리어 넌'의 시즌3 제작을 취소하면서, 이에 반발한 시리즈의 팬들은 온라인 해시태그 청원 운동에 이어 오프라인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트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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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 넌’ 같은 미완결 시리즈의 제작 취소만 문제가 아니다. 매달 영화와 시리즈 수십편이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에서 사라진다. 국제 방영권을 사들여 공개했던 콘텐츠는 기한이 만료되고, 넷플릭스뿐 아니라 디즈니, 파라마운트 등의 경쟁 OTT가 각자 가진 콘텐츠를 자기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도록 가두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영화 ‘아담스 패밀리’(1991)의 파생 시리즈 ‘웬즈데이’로 전 세계적 흥행 성과를 거뒀지만, 정작 원작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다. 액션물 ‘람보’나 공포물 ‘스크림’ 프랜차이즈 시리즈부터 ‘마진 콜’ ‘셔터 아일랜드’ ‘에어포스 원’ 등도 사라져, 넷플릭스 사용자들은 이 영화들을 보려면 다른 OTT에 가입하거나 영화가 있는 IPTV를 찾아서 주문형 비디오로 별도 구매해야 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심해 스릴러 '어비스'(1996). '아바타: 물의 길' 이전 바다 마니아인 감독이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월트디즈니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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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다행. 하지만 실제로는 이 OTT와 콘텐츠의 홍수 속에 온데간데없이 ‘증발’해버리는 영화와 시리즈들도 있다.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가 처음 제임스 본드로 출연했던 ‘007 카지노 로얄’(2006)이나, ‘아바타: 물의 길’ 이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만든 최고의 바다 배경 영화였던 ‘어비스’(1989)도 더 이상 OTT에서 볼 수 없다. 인공지능 스포츠카 ‘키트’가 등장했던 ‘전격 Z작전’ 같은 추억의 시리즈들은 한때 OTT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옛 명작이나 독립 예술영화는 이런 ‘콘텐츠 증발’에 가장 취약하다. 비디오테이프나 DVD 같은 물리적 실체가 있었던 시절과 달리, 이제 OTT의 클라우드(온라인 저장공간)에서 사라진다는 건 콘텐츠에 사실상의 사형 선고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빅피쉬’(2003)의 작가 존 어거스트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OTT에서 사라진 영화들을 단지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타임캡슐에 묻어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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