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2 (일)

이슈 선거제 개혁

노무현·문재인의 꿈 ‘소수파 살릴 선거제’…관건은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배분 방법[국회의원 선거제도, 이번엔 바꾸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③ 권역별 비례대표제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를 택한 한국 정치에서 비례대표제는 ‘정치적 경쟁’과 ‘소수파 생존’을 최소한 담보하기 위한 보완 장치이다. 정당이 표를 얻은 만큼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 사표를 줄이려는 취지다. 1963년 처음 도입된 뒤 2020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변화를 꾀했지만 위성정당 사태로 다당제 실현이라는 취지가 퇴색되는 수난을 겪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새로운 방식의 비례대표제를 다시 한번 실험하게 될지 주목된다. 지난 1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의결했다. 결의안에 담긴 3가지 개선안에 모두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포함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는 27일부터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를 추진한다. 전원위 논의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에서 전국 단위로 뽑던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선출할 수도 있다.

6개 권역 나눠 비례대표 선출
승자독식·지역주의 완화 기대
의석수 늘려야 원래 취지 살아

권역별 비례대표제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법이다. 김 의장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는 서울, 인천·경기, 충청·강원, 전라·제주, 경북, 경남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총 비례 의석수를 권역별로 나누고 각 권역에서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다만 현행 공직선거법상으로는 전국 득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을 얻는 정당만 비례 의석을 확보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성 확대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대안으로 오랫동안 제시돼왔다.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도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정치적 목표로 삼았다. 문 전 대통령은 자서전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정확하게 정당별 득표율에 부합하게 의석을 가져가게 하는 선거제도”라며 “소수파의 국민도 사표 없이 완벽하게 지지한 비율에 해당하는 대표를 낼 수 있는 합리적 제도”라고 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2015년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내며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유권자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지난 21대 총선 제도를 논의한 정개특위에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다시 ‘병립형’과 ‘연동형’으로 나뉜다. 병립형은 비례 의석이 지역구 의석과 독립적으로 계산된다. 정당 득표율에 권역별 총 비례 의석수를 곱하면 된다. 거대 양당이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해도 정당 득표율이 높으면 그만큼 비례 의석도 많이 가져가는 것이다.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과 비례 의석이 서로 연동된다. 권역별 총 비례 의석수에 권역별 정당 득표율을 곱하되, 해당 권역 지역구 선거에서 그만큼 확보하지 못하면 비례 의석으로 채워준다. A정당이 특정 권역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비례 의석수보다 많이 낸다면 이 권역 비례 의석 몫은 없어진다. 지역구 의석 연동 비율을 50%로 줄이는 준연동형도 있다. 국민의힘은 연동형은 반대하지만 병립형으로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하는 방안엔 긍정적이다. 의석수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개혁의 모양새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정치인 모임 국회서 회견
“비례 확대·지역구 축소” 요구

비례대표 수 증가 없인 ‘개악’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반드시 정당별 득표율에 비례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비례성이 향상되려면 비례대표 정수를 현행 47석보다 확대해야 한다. 47석을 6개 권역에 7~8석으로 균등 배분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각 정당이 해당 권역에서 최소 12.5%의 지지를 받아야 비례대표 의원 1명을 배출한다.

21대 총선 당시 정당별 득표율을 단순 대입해보면 정의당은 서울에서 9.73% 지지율을 받았는데 비례 의석을 단 한 석도 얻지 못한다. 현행 비례 의석수를 유지한 채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꾼다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영호남 지역주의는 약화할 수 있을지언정 소수정당에는 불리한 ‘개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5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정책 토론회에서 “47석 그대로 권역별 비례제를 시행하게 되면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든지, 5~6명 배정되는 지역의 경우 오히려 소수정당이 진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득표수가 더 많이 필요해서 비례성이 낮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도 “권역별 비례제를 하면서도 배정 의석이 적다면 오히려 소수정당에는 장벽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초당적 청년 정치인 모임인 ‘정치개혁 2050’은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구 축소와 비례대표 확대를 요구했다. 이들은 “양당 중심의 무한정쟁을 유발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비례대표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소선거구 지역구를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에서 권역별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은 2 대 1 범위에서 정하도록 제안했다. 정개특위는 결의안에서 지역구 253석은 유자하면서 비례대표 50석을 늘려 97석으로 하는 안과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만큼 비례 의석수를 늘리는 안을 각각 제안했다. 97석으로 늘어나면 지역구(253석) 대비 비례대표 의석 비율은 약 2.6 대 1이 된다. 다만 국민의힘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해 추후 전원위 논의 과정에서 난항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역당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인구수에 비례해 무작정 배분하면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에만 의석이 쏠릴 수 있다. 정개특위에서는 지방소멸에 대비하기 위해 수도권과 지방 권역별 의석 할당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결의안에는 “권역별 의원정수는 인구범위 2 대 1의 범위 안에서 수도권 외의 인구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배분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정개특위의 개방형 명부제는
여성 비례의원 추천제와 충돌
여성·장애인 대표성 확보 쟁점

여성 등 소수자 대표성 확보 방안은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대표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후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별 대표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비례대표 본래 취지인 직능별·소수자 대표성을 담보하기엔 어려울 수 있다. 정개특위 결의안에 담긴 개방형 명부제 도입은 공직선거법상 여성 후보자 의무 추천제와 충돌한다.

지금까지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지지 정당에만 투표하는 폐쇄형 명부식이었다. 반면 개방형 명부는 정당이 후보자 순위를 정하지 않고 유권자가 선거에서 정당뿐 아니라 후보자도 찍도록 하는 제도다. 부분 개방형 명부는 정당이 후보자 순위를 정하되 투표용지에 정당과 후보자 모두 표시된다.

개방형 명부는 투명성을 보장하지만 여성 후보자 의무 추천제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자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해야 하고 여성을 후보자 명부 중 홀수 번호에 배정해야 한다. 비례대표 1번에 여성을 배정해 당선 가능성을 높여 국회의원 성비를 맞추려는 취지이다. 정당이 후보자 순위를 정하지 않고 유권자에게만 맡기면 여성 당선자를 담보할 확률이 떨어지는 셈이다.

정개특위는 지역구 후보자 일부를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에 중복 입후보하는 제도도 제안했다. 이 역시 명망가에게 유리하다는 단점이 있다. 정개특위는 (부분)개방형 명부제 및 중복 입후보제와 여성 후보자 의무 추천제와의 조화 방안을 계속 논의해가기로 했다.

군소정당을 중심으로 비례대표 의석 할당 전제 조건이 되는 봉쇄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직선거법상 전국 득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을 얻은 정당에 한해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간다. 원내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조항 개정을 요구하는 측에선 군소정당 또는 지역 정당이 비례 1석을 확보하는 권역 내 정당 득표율을 얻어도 전국 득표율 3% 벽에 가로막힌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 비율을 낮출 경우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유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탁지영·김윤나영·조미덥·문광호 기자 g0g0@kyunghyang.com

▶ [여성의 날] 당신의 차별점수는 몇 점일까요?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