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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단독] ‘더 글로리’ 현실판… 온몸이 피멍으로 멍든 그날 ‘악몽의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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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10명이 ‘기강 잡는다’며 후배 1명 집단폭행

경남도교육청은 “전수조사 결과 못 알려줘” 논란

“대체 왜 우리 아이가 이렇게 죽도록 맞아야 했나요? 가슴이 미어집니다.”

지난 18일 A군의 어머니 B씨는 주말을 맞아 집에 온 아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도 잠시 가슴과 허벅지 등 온몸에 시퍼런 피멍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들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자초지종을 물어본 B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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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교 기숙사에선 무슨 일이…악몽의 90분

B씨의 이야기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상황은 이랬다.

A군은 이달 초 경남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 거리가 먼데다 이 고교에는 기숙사가 있어 A군은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주말이면 집에 왔다.

이 학교 전교생 90% 이상이 A군처럼 기숙사에서 지내며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입학한 지 10여일이 지났을 무렵인 지난 13일 A군은 악몽 같은 시간을 겪어야 했다.

평소 A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기강을 잡겠다는 이유로 2·3학년 선배들이 A군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이날 밤 11시쯤 “따라와라”는 선배 지시를 받고 A군은 같은 층에 있는 3학년 선배들이 생활하는 기숙사 방으로 갔다.

방 안에는 선배 10명이 있었다. A군은 이 방에서 선배들에게 마구 두들겨 맞았다.

가해 학생 일부는 사감이 오는지 감시하기 위해 방문 밖에서 보초를 서기도 했다.

곧이어 보초를 서던 학생도 방 안으로 들어와 폭행에 가담했고, 방 안에 있던 다른 가해 학생이 다시 방문 밖으로 나가 보초를 서는 식으로 교대로 선배들의 A군 집단폭행이 이어졌다.

폭행에 가담한 일부 가해 학생은 철제 침대 프레임을 빼서 그것으로 A군을 때리기도 했다.

이날 집단폭행은 90분 동안 계속됐다.

세계일보

gettyimagesban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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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은 맞으면서 “우리가 1학년일 때는 더 맞았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B씨는 “우리 아들이 맞다가 죽을 것 같으니깐 가슴이 아닌 차라리 다른 곳을 때려 달라고 애원했을 정도였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당시 기숙사에는 사감이 있었지만,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A군 집단폭행이 있었던 방과 사감실은 구조상 거리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데다, 가해 학생들이 A군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윽박했다.

또 A군과 같은 기숙사 방을 쓰던 친구들도 겁이 나 차마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B씨가 아들의 멍을 본 뒤 담임교사에게 연락할 때까지 일주일 동안 집단폭행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A군은 전치 3주 진단을 받고 현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B씨는 경찰에도 학교 폭력 피해를 신고했다.

경찰은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10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경찰 관계자는 “(집단폭행에 대해서는)피해자 주장에 어긋나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특수상해 혐의로 이들을 입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만간 사건을 마무리짓겠다는 방침이다.

세계일보

경상남도교육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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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교육청 “전수조사 결과 알릴 필요 있나” 논란

경남도교육청은 A군 집단폭행 피해 사실이 알려지자 대응에 나섰다.

A군에 대해서는 심리 상담과 조언 등을, 가해 학생들에 대해서는 출석정지 10일의 긴급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A군이 병원 치료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가해 학생들은 정상 등교, 정상 수업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도교육청은 출석정지 10일이 현 단계에선 과한 조처라면서도 학교폭력예방법에 근거해 가해 학생의 학습권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들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파문이 확산, 사회적 공분이 이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 감정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해 학생들은 학교 입학 후부터 같은 반에서 수업해왔고, 이 가운데 몇몇은 기숙사 방도 같이 써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숙사 폭력 대물림 의혹 등이 제기돼 도교육청은 추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23일 A군 학교 전교생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전수조사 결과를 언론에 알릴 필요 있나”며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25일 김광섭 경남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전수조사 목적이 제2의, 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하는 건데, 그걸 언론에 알리지 않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마 전수조사에서 생각보다 많은 피해자가 나왔기 때문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특히 학교폭력 문제는 사후 대책 마련이 수반돼야 하는데 자꾸만 덮으려고만 하니 그게 문제”라며 “도교육청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책 등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정규헌 경남도의원은 “문제가 발생한 학교를 직접 찾아가 확인해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도교육청으로부터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창원=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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