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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日초등교과서 강제징용 표현 희석... ‘끌려왔다→동원됐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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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초등학교 교과서 어떻게 달라졌나

독도 ‘불법’ 규정한 日교과서 검정 통과… 우리 정부 “깊은 유감”

조선일보

징병 조선인에… ‘지원해서’ 단어 추가 -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심의회 심사를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아래)가 자료사진에 대해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라고 기술하며 징병의 강제성을 희석했다. 기존 교과서에서는 같은 사진(위)에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이란 설명이 달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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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28일 강제 징용에 대한 기술을 이전보다 모호하게 희석한 초등학교 교과서 10여 종에 대한 검정(檢定)을 승인했다. 내년 이후 일본 초등학생들이 공부할 이 교과서엔 독도(일본은 ‘다케시마’로 표기)에 대한 설명도 ‘한국이 점거’에서 ‘한국이 불법 점거’로 바뀌었다. 과거사에 대한 역사 인식이 후퇴한 것이다.

이날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증 조사 심의회 총회를 열고 초등학교 3~6학년의 사회교과서 10여 종에 대한 검정을 승인했다. 일본 초등학교들은 내년에 정부의 검정을 받은 사회 교과서 가운데 1종을 선택해 그 이듬해부터 학생들을 가르친다. 과거사를 왜곡 기술한 일본의 교과서 검정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과 관련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단호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앞서 외교부가 대변인 성명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한 데 이어,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5시쯤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공사를 대사대리 자격으로 외교부 청사에 초치해 교과서 검정에 대해 항의했다.

새 교과서엔 일제강점기 강제 징병·연행된 한국인에 대한 기술이 이전보다 약화하거나 모호한 표현으로 희석됐다. 점유율이 55%로 가장 높은 도쿄서적 6학년 사회 교과서는 징용과 관련해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왔다’고 표현했던 것을 ‘강제적으로 동원됐다’고 바꾸었다. 여전히 ‘강제적으로’라는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쓰긴 했다. 하지만 연행한다는 의미의 ‘끌려왔다’를 ‘동원됐다’는 순화된 표현으로 대체했다. 같은 책에서 징병과 관련한 표현은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되어’라고 한 문장을 ‘일본군의 병사로서 참가하게 되었으며 이후에는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바꿨다. 교육출판의 교과서도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이전 기술을 ‘징병해’를 제외한 ‘일본군 병사로 전쟁터에 내보냈다’고 수정했다.

조선일보

독도에 대한 표현 수위는 높아졌다. 도쿄서적은 이전에 ‘다케시마는…한국에 점거돼’였던 표현을 ‘불법 점거돼’라고 바꿨다. 또 독도에 대해 ‘일본의 고유 영토’라며 이전(’일본의 영토’)보다 강한 표현으로 왜곡한 교과서도 늘어났다. 일본문교출판은 과거 ‘일본의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라는 기술을 ‘일본의 고유 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로 바꿨다. ‘독도가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일본 검정 교과서는 독도와 함께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는 남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홋카이도의 북쪽에 위치) 및 중국과 영토 분쟁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 대해서도 일본의 고유 영토로 명기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4년에 한 번씩 검정한다. 2021년엔 고등학교 1학년, 지난해엔 고등학교 2~3학년의 교과서에 이어 올해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했다. 내년은 중학교 교과서를 검정하는 순서다. 이번 과거사 기술 수정은 이달 중순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는 무관하게, 미리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이뤄졌다. 일본 정부가 악의적으로 정상회담 직후에 역사 왜곡을 감행했다고 보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일본의 출판사는 교과서를 편찬할 때 문부과학성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기준으로 삼는데, 이 ‘학습지도요령’은 일본 각의(閣議·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과거사 기술 방침을 바꾼다. 이번 강제 징용·징병 관련한 기술 변경은 2021년 ‘조선인 전시(戰時) 노동은 강제 연행이나 강제 노동이 아니다’라는 각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검정한 고등학교 2·3학년 역사 교과서에도 같은 수정이 이미 이뤄졌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에 대해 ‘전시 국민 동원령’에 따라, 일본 국적자를 징병·징용한 조치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국가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한국인도 일본 국적자였기 때문에 불법성은 없었다는 해석이다. 1910년 조선 강제 병합이 합법이란 일본의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한국의 입장과 정면충돌한다. 우리는 일제의 조선 병합 자체가 불법이기에 ‘합법적인 국가 공권력 행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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