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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주총서 ‘반도체 감산’ 필요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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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서 “계속 공급하면 가격 급락”…삼성은 “감산 없다” 고수

미 정부 핵심 정보 요구에 “보조금 신청 너무 힘들다” 불만


한겨레

에스케이하이닉스 박정호 부회장이 29일 경기 이천 에스케이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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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에스케이(SK)하이닉스 부회장이 올 상반기 반도체 시장이 수요 감소로 인해 더 악화할 것이라 내다보며 감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비감산’과는 상반된 태도다. 또 박정호 부회장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 생산 수율(무결함 제품 비율) 등 기업의 핵심 영업 기밀까지 요구하는 것에 대해 “엑셀도 요구하고, 신청서가 너무 힘들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공식적인 불만이 터져 나온 건 박 부회장이 처음이다.

29일 경기 이천 에스케이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 부회장은 “(반도체) 디(D)램 시장은 과점으로 공급업체가 3개 밖에 없다. (이들이) 엄청난 공급을 한다고 생각하면 (고객이) 가격을 계속 내린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은 3명(기업)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계속 게임을 하면 다운사이클(경기불황)에서 공급이 초과해 가격이 내려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과정을 겪는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감산 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상황에서, 디램(메모리반도체) 가격이 더 빠르게 하락하는 상황을 꼬집은 셈이다.

현재 디램 시장 2·3위인 에스케이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감산에 들어갔다. 시장조사기관 옴니아에 따르면 두 회사 점유율(2022년 기준)은 각각 27.0%, 25.9%다. 2·3위 업체가 시장 상황에 맞춰 감산에 돌입했지만 1위인 삼성전자(42.8%)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0일 이재용 회장과 반도체 사업부 수뇌부가 가진 회의에서도 ‘비감산’ 입장을 고수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반등 시점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디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에스케이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전 분기 대비 20% 떨어지고, 2분기에도 10∼15%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하반기에 수요가 회복할 지도 불투명하다고 내다봤다.

박정호 부회장은 메모리반도체 가격 결정 구조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박 부회장은 “엔비디아 에이(A)100에 공급하는 에이치비엠(HBM·고대역폭 메모리반도체)는 200달러 미만이지만, 그들은 1만 달러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수요가 커지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수요가 늘어 고가에 팔리지만, 여기에 공급하는 메모리반도체는 그만큼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우리나라가 디램 시장(점유율)을 70% 차지하는 상황에서 사이클이 생기는 걸 막아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경영진의 무거운 책임감”이라고 덧붙였다.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들이 서로 경쟁하는 이른바 ‘치킨게임’을 펼치는 것보다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찾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셈이다. 한국은 지난 2월까지 12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했는데, 2월에만 42.5%가 줄어든 반도체 수출이 무역적자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날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등급(Baa2)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글로벌 메모리칩 산업이 전례 없는 침체를 겪는 가운데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올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수준의 부채를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유를 밝혔다.

다급한 에스케이하이닉스와는 달리 삼성전자는 올해도 50조 원대의 반도체 투자 규모를 유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경계현 디에스(DS)부문장(사장)이 지난달 임직원 대상 설명회에서 “업계 전반적으로 투자 축소 움직임이 있지만 삼성전자는 미래를 위해 투자 축소를 하지 않는다”며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 메모리 사업 분야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박정호 부회장은 주총 뒤 기자들과 만나, 한-미간 현안으로 떠오른 미국 반도체법과 보조금 문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7일(현지시각)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짓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신청할때 제출해야 하는 정보에 대해 웨이퍼 생산량, 수율, 제품 종류별 예상 가격·매출 등을 써내라고 상세지침을 내놨다. 정보를 추적·연동할 수 있도록 엑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제출하라고 했다. 박 부회장은 “엑셀도 요구하고, 신청서가 너무 힘들다”며 “(보조금 신청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내 짓는 신공장은 첨단 패키징 공정 공정이어서 전체 수율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실제로 그 안에 (전공정) 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부담이)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박 부회장은 미-중 반도체 패권 갈등이 촉발한 경영 불확실성에 대해 “한 회사가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각국 정부와 고객 니즈에 반하지 않으면서 최적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매일 한다”고 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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