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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추가경정예산 편성

지출 삭감이냐, 채무 늘리기냐…윤 정부, ‘세수 펑크’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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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적 재정 운용, 살얼음판 경기관리에 부담

중장기 세입기반 취약해져 내년이 더 문제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맨 왼쪽)로부터 내수활성화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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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연속 세수가 정부 예상보다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세수 결손에 따른 재정 운용 파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채무를 늘리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나서거나, 경기의 급랭을 감수하며 예정된 지출을 큰 폭으로 줄여야 하는 탓이다. 현 정부 들어 공격적으로 이뤄진 대기업·부자 감세 조처에 따른 세수 부족이 국정 운영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 이례적 수준의 세수 부족

2일 기획재정부의 ‘국세 수입 현황’과 <월간 재정동향>을 보면, 올해 들어 1·2월 두달 연속 세수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2월까지 누적 국세 수입은 54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5조7천억원이 적다.

통상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은 드물기 때문에 세수 증가폭에는 변동이 있으나 총액은 늘어난다. 실제 정부도 올해 경상성장률(물가를 반영한 경제성장률)을 4%대로 보며, 올해 세수(총수입 기준)를 한해 전보다 약 16조6천억원 더 많이 잡아 ‘2023년 예산’을 마련한 터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세수가 걷힌다면 20조~30조원이 훌쩍 넘는 대규모 세수 부족이 발생할 공산이 높다.

연중 세수 전망은 더 어둡다. 정부가 2023년 예산안을 편성할 당시인 지난해 9월 예측한 경기 흐름보다 회복이 더디고, 최근에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을 계기로 금융시장 불안도 확대된 상태다. 금융 불안과 부실 확대는 소비·투자 심리 악화로 이어져 세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예산안 편성 이후 진행된,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한 수조원대 대규모 추가 감세가 추진된 터라 세수 기반은 더 약해졌다. 아파트 매맷값 급락세는 주춤했으나 반등 기대는 일러서 거래량 회복도 단시간 내에 점치긴 어려운 환경이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정책총괄관은 “올해 세수는 2분기 이후 경기 흐름이 좌우할 것이다.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된다면 1~2월 부족분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 추경과 불용의 갈림길

두자릿수 세수 부족은 윤석열 정부가 올해 ‘추경’과 ‘불용’이란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걸 뜻한다. 세수가 부족하면 예정된 지출을 강제로 줄이거나(불용), 세입 경정을 통해 채무를 늘려야(추경)만 한다. 추경은 반드시 국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두 선택지를 놓고 깊은 고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감내해야 할 비용이 적지 않아서다. 추경을 통해 채무를 늘리면, ‘건전 재정’이란 현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현 정부는 전 정부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악화한 재정 건전성 회복을 줄곧 강조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임기 내 증가폭(50%→52.2%·국가재정운용계획)을 ‘2%포인트 초반’(문재인 정부는 약 15%포인트)에 묶는다고 밝힌 바 있다. 집권 2년차부터 대규모 추경을 하게 되면 이런 계획의 전면 수정은 불가피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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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 재정에 집착해 불용을 선택할 땐 경기 관리 부담은 커진다. 살얼음판 같은 경기 흐름을 정부가 깨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예로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 당시 정부는 추경이 아닌 불용을 선택하면서, 그해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한해 전의 절반인 0.4%포인트(실질 기준)로 뚝 떨어지며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준 바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애초 예산 편성 때 재정지출의 성장률 기여 효과까지 고려해 지출 규모를 결정한 만큼, 강제로 지출을 줄이면 안 그래도 1.6~1.7% 수준으로 낮게 전망된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 무너진 세수 기반, 내년이 더 걱정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들어선 이후 감세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세 부담을 덜어 경제주체들의 소비·투자 여력을 키우면 세수가 다시 늘어난다는 전형적인 ‘공급 중시 경제학’ 처방에 따른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법인세율이 과표 구간별로 1%포인트씩 떨어졌고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과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대폭 낮추거나 완화했다. 기업들의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들어가는 투자비의 일정액을 세금에서 빼주는 세액공제도 확대했다. 소득세도 과표 구간 조정을 통해 세 부담을 줄였다.

이런 조처가 세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는 일찌감치 나왔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산한 감세 규모만 연평균(2023~2027년) 약 12조원에 이른다. 흔들린 기반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과 그 이후에도 현 정부의 재정 운용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세법 개정은 내년부터 파급력이 더 커지고 중장기 세입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성격의 조처였다”며 “세금은 줄이는 건 쉬워도 다시 늘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현 정부의 재정 운용이 집권 기간 내내 진퇴양난에 빠질 공산이 크다”고 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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