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성인문화 산업을 탐구하는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일본편'은 2회에서 일본 AV 여배우들을 인터뷰하며 AV 산업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해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 예고편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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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깬 도전인가, 성착취 산업에 대한 미화인가. 일본 AV(Adult Video, 성인물 영상) 배우들을 인터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 일본편’이 촉발한 사회적 공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에서 AV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유포·판매하는 게 불법이지만, 해외음란물을 시청하는 행위는 암암리에 널리 이뤄지는 상황.
이런 현실에서 일본의 AV 산업을 탐구한 것은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와, 해당 산업을 지탱하는 성착취적·인권침해적 구조에 대한 언급 없이 유희적으로만 다룬 것은 유해하다는 지적이 맞선다. 심지어 초등학생 10명 중 3명(※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초등학생의 성인물 이용률은 33.8%)이 성인물 시청 경험이 있다는 시대에 미디어는 성인문화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신동엽·성시경이 해외의 성인문화 산업을 인터뷰 등을 통해 탐구하는 ‘성+인물’이 특히 논란을 빚은 부분은 총 6회 분량 중 일본의 AV 여배우를 인터뷰한 2회다.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 “남배우가 멋대로 구는 일은 없다”며 AV 촬영이 온전히 자의에 의해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사고 싶은 명품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번다”며 높은 수입을 암시하거나, “AV가 성욕을 해소시켜 성범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발언까지 아무런 반론이나 참고자료 없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 스틸컷.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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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언론을 만난 정효민 PD는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사는 이들이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신중한 태도와 소신을 들어보려고 노력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잘 조명되지 않는 직업군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런 기획은 일견 가치 있어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처럼 일본 AV 산업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인터뷰를 통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등의 문제는 가려진다는 점이다. 일본 AV 산업의 성착취적 구조는 현지에서도 여전히 사회문제로 다뤄지는 논쟁적인 영역이다. 일본에 기반을 둔 국제인권기구 휴먼라이츠나우(HRN)는 2016년 펴낸 ‘일본 성인물 산업에서 나타나는 인권침해 보고서’에서 “연예인이나 모델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동의했다가 포르노에 출연하도록 강요되는 젊은 여성들의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HRN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AV 제작사들은 모델이나 아이돌 등으로 스카우트하는 것처럼 젊은 여성들에게 접근해 계약서를 쓰게 한 뒤 AV 촬영을 강요, 거부하면 위약금으로 협박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압박했다. 보고서에 기술된 피해자 중에는 계약 종료 후에도 촬영물이 유통되는 것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다.
휴먼라이츠나우(HRN)가 2016년 발간한 ‘일본 성인물 산업에서 나타나는 인권침해 보고서’에 등장하는 피해 사례. AV 촬영을 강요받은 피해자가 제작사와 계약을 해지한 후에도 자신의 촬영물이 유통되는 것에 정신적 고통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다. 사진 HRN 보고서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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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회가 지난해 6월 ‘AV 출연 피해 방지·구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일본 AV 업계의 인권 침해 관행이 현존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해당 법안은 ‘AV 출연자는 영상이 공개된 이후 1년 동안 무조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계약 해지를 방해하기 위한 부실 고지 등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같은 법안 통과 이후 4개월(지난해 6~10월) 동안 공식 상담창구에 접수된 관련 피해 사례는 103건에 달했다.
‘성+인물’ 제작진은 일본 AV 업계의 이런 어두운 측면까지 다루는 건 예능이 아니라 시사·교양의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정 PD는 인터뷰에서 ‘AV가 성범죄율을 낮춘다’ 등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우리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통계를 가져오는 등의 접근은 할 수 없었다”며 “또 이 콘텐트를 볼 19세 이상 시청자라면 이를 (AV 산업에 대한) 미화로 받아들이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배우들을 앞에 두고 ‘이 산업에서 착취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느냐’를 예능에서 묻는 것은 결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도 했다.
넷플릭스 '성+인물' 예고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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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성+인물' 예고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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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청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능이기 때문에 AV 산업과 같은 논쟁적 주제를 다룰 때 더욱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대중성’만을 근거로 콘텐트를 만들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지향해온 수많은 가치들이 조금씩 허물어질 수 있다”며 “아무리 공공연하게 유통되는 현실이라 해도, 우리나라에선 엄연히 불법인데다 범죄와 연관이 깊은 AV를 미화한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말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도 “AV는 성범죄율을 낮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폭력적인 성문화를 조장한다는 게 성 이론에서 연구돼온 바”라며 “또 일본 AV 산업 내 성착취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일본 여성계가) 싸워온 오랜 역사가 있는데, ‘성+인물’은 이같은 맥락을 모두 배제한 채 이야기해 왜곡된 성 인식을 퍼뜨렸다”고 꼬집었다.
AV 산업을 다룬 방식에 대한 비판을 단순히 성문화를 향한 ‘엄숙주의’라 치부하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 평론가는 “성 인식이 점차 개방되는 상황에서 엄숙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마녀사냥’(JTBC)과 같이 커플 간의 혼전 임신 문제를 다루는 등 자유롭고 평등한 성을 지향하는 콘텐트는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라며 “하지만 성 산업의 경우 착취와 인권 문제가 결부돼 있다는 점에서 개방해야 하는 문화로 보기 어렵다. 개방해도 괜찮은 문화가 어디까지인지 구분할 수 있는 제작진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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