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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단독]85년만의 귀국…日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고국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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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영생원 유해 30위 강제동원성 입증

다음 달 정부차원 현지답사 후 봉환 시작

한일 관계개선에 봉환작업 급물살 타

13년만에 정부 차원의 봉환 기대감↑

"협상 남았다…서두르기보다 신중하게"

아시아경제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설치된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조선인 희생자 유해가 8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을 전망이다. 한일 양국 간 관계개선이 이뤄지면서 지지부진하던 유해봉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측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12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추진 중인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봉환 대상은 일본 고쿠라 교회의 납골당인 ‘영생원’에 안치된 유해다. 영생원은 조선인 유골을 안치한 시설로, 재일 조선인 인권신장 활동을 펼쳤던 최창화 목사가 1973년에 건립했다. 157위의 유골이 있었지만 유족에게 72위를 봉환하고, 현재는 85위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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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 고쿠라 교회 부설 '영생원'. 지난 2월25일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오른쪽)가 유골 안치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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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지난해 시작한 실태조사를 통해 85위 중 30위의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해냈다. 재단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강제동원 피해신고 데이터와 일본 측의 명단을 대조해 만든 결과다. 이후 전문가 간담회를 연이어 개최하며 쟁점과 봉환에 필요한 절차를 논의했다. 정부는 다음 달 고쿠라 교회로 인력을 파견해 유해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일본 측과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국내 유가족과 연락이 닿은 봉환 예정 유골은 9위였다. 정부는 자체 DB로 영생원 유해와 한국 유가족 주민등록 데이터를 일일이 대조했다. 대부분 유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실제로 연락이 닿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연락처와 주소지가 변경된 탓이다. 정부는 유가족 확인절차와 별개로 유해봉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유족을 찾지 못한 유해는 당분간 무연고 납골당인 부산 영락공원에 안치한다.

한일 관계개선에 유해봉환 논의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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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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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봉환 절차논의가 급물살을 탄 배경에는 한일 관계개선이 있다. 고쿠라 교회 측은 한국에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집권 시절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실제 봉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협조가 필요한 문제라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나빴을 때는 추진하기 어려웠다”면서 “한일 관계개선이 유해봉환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이번 유해봉환은 정부 주도로 13년 만에 이뤄진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 주도로 봉환된 유해는 2008~2010년 423위가 마지막이었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와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합의를 끌어낸 게 시발점이 됐다. 이후에도 민간차원의 유골봉환은 있었지만 적극적이고 신속한 유해봉환을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강제동원 희생자 문제에 유감을 표명한 점도 유해봉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7일 방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나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해법 이후 직접적인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속도 내기보단 신중하게 접근"
아시아경제

일본 탄광 강제징용 피해자 조선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일본 전역에 있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을 고려하면 갈 길이 먼 상태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후생노동성의 조사로 일본 내 사찰 납골당에 봉안된 조선인 징용 유골은 2799다. 한국 정부 추산으로는 일본 전역에 1만1010구가 있고 6812구가 봉환 대상이다. 특히 군이 아닌 기업에 의해 강제동원된 희생자 유해는 봉환 사례가 전무하다.

다만 정부는 속도를 내기보다는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는 외교적 문제가 있어서 국가가 봉환해오는 게 원칙”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봉환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면 봉환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조용히 추진해왔다”고 귀띔했다.

조선인 강제징용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발령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질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며 꾀어내 피해를 본 조선인이 많았다. 징용 후에도 구타나 고문 같은 가혹행위가 많았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도 다수였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군인·군무원·노무자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약 780만명으로 추산된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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