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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사는 회사원 김 모씨(38)는 최근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부산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KTX 부산역 근처에 위치한 비즈니스호텔에 갔는데 칫솔·치약은 물론 면도기까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날 아침부터 회의가 있어 급한 마음에 호텔 1층으로 내려갔는데 자판기로 일회용품 칫솔 세트와 면도기를 팔고 있었다. 칫솔과 치약 세트는 1000원, 일회용 면도기는 1000원인데 김씨는 한 번만 쓰려고 구입하자니 아까워 편의점으로 나가 다회용품을 샀다. 김씨는 "일회용품을 줄이자면서 호텔 1층에 일회용품 자판기를 설치한 것은 모순"이라면서 "차라리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으니 챙겨 오라고 사전에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말부터 중대형 호텔부터 순차적으로 일회용품 비치를 규제하기로 하면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12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객실 50개 이상 숙박업소는 내년 3월 말부터 일회용품을 객실에 무상으로 비치할 수 없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은 지난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 문제는 여전히 호텔에 대한 별다른 가이드라인 없이 법안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유수의 대형호텔은 이른바 '어메니티(욕실용품 등 소모품)'를 다회용품으로 바꾸는 추세다. 그러나 중형급 호텔은 소모품 도난 사고가 잇따라 난감한 상황이다. 다회용품을 모두 훔쳐가면 10만원이 훌쩍 넘는 사례도 있어 호텔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형급 호텔이 선택한 대안은 바로 일회용품을 자판기로 판매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유료로 판매하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이미 '어메니티 자판기'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이 자판기는 신용카드로 간단하게 일회용품을 구매할 수 있어 외국인 관광객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데 뒤늦게 일회용품을 찾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다회용품을 지참하라고 하기 어려워 별도로 일회용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대만을 비롯한 해외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대만은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숙박비를 감면하도록 지침을 내놔 무작정 금지하겠다는 한국과 대조를 이룬다.
대만 환경보호서(EPA)는 지난달 '생활 및 일반 산업폐기물 관리 강화' 방안을 밝히면서 오는 7월부터 일회용품을 소비자에게 주도적으로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로 했다. 만약 소비자가 원하면 선택적으로 제공하거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대만 EPA는 숙박업소가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오는 9월부터 숙박료 가운데 5%를 할인하도록 하고 다회용품 지참을 유도하고 있다. 국내 호텔이 일회용품을 유료화하면서 별다른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것과 뚜렷이 구별된다.
업계는 정부가 일회용품 제공을 금지하면서 대국민 홍보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텔 입장에서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으니 칫솔과 치약을 챙겨 오라고 말하기 어려우니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전 세계 숙박업소에서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는 추세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 호텔 체인 메리어트인터내셔널, 인터컨티넨탈호텔그룹(IHG) 등이 일회용품을 대용량 용기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할지, 아니면 무상 제공만 금지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하위법령은 숙박업소 의견을 듣고 어떻게 규정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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