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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사회의 높은 기대치에 스스로 고립”…BBC가 본 한국 ‘은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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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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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내 인생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고립되기 시작했습니다”

26일(현지 시각) 영국 BBC에 따르면 약 5년간 은둔 생활을 했던 유승규(30)씨는 아버지가 원해서 가게 된 대학을 한달 만에 그만둔 뒤 이같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 가족이 보고 싶지 않아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유승규씨는 “왜 (학업 과정)을 선택할 자유가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우 비참했다”며 이에 대해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없어진 한 재활단체를 통해 은둔 생활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2019년 은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후 지금 그는 자신과 같은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안무서운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BBC는 유승규씨의 사연을 전하며 점점 더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사회의 높은 기대치에 압박감을 느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여성가족부는 은둔형 청소년을 ‘긴 시간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외부와 단절되고 정상적인 삶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으로 정의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만 19~ 39세 인구 중 약 34만명, 즉 이 연령대의 3%가 외로움을 느끼거나 고립돼 있다.

BBC는 돈 문제가 젊은이들을 은둔 생활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며 은둔 생활을 했던 박태홍(34)씨의 사연도 소개했다. 박태홍씨는 “은둔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며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사회에 적응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은둔 생활이 어떤 이들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의 피로와 불안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방에만 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박태홍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자주 싸웠고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너무 힘들어서 내 자신을 돌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28살이던 2018년부터 치료를 시작해 서서히 사회생활에 다시 적응하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는 공부를 강요받는다. 너무 획일적이다”라며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했다.

BBC는 이같은 사연을 전하며 “은둔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 사이 공통점은 자신이 사회 또는 가족의 성공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일부는 통상의 진로를 따르지 않으면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고, 또 다른 일부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 비난을 받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씨즈(seed:s)의 김수진 선임 매니저는 “한국 젊은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나는 실패했다’, ‘나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결국 사회와 단절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은둔형 외톨이들은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구나’, ‘그렇게 어렵지 않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며 더 다양한 직업과 교육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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