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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아이가 굶어서...” 마트서 분유 훔친 여성에 경찰이 건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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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17만원어치 물건을 훔치다 현행범으로 붙잡힌 40대 여성에게 경찰이 분유를 선물했다. 동종 전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미납해 수배까지 된 여성이었다. 이런 여성에게 한 경찰관이 분유를 선물했다. 무슨 사연일까.

조선일보

지난 3월 23일 강원 원주경찰서 치악지구대 소속 고탁민 경사가 마트에서 분유를 구매하고 있는 모습. /강원경찰청


2일 강원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 23일 원주시 관설동 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담은 뒤 계산하지 않고 마트를 빠져나가려던 A씨가 보안요원에게 적발됐다. A씨는 이 마트에서 소위 ‘요주의 인물’이었다. 소액이지만 그간 절도를 했던 정황을 마트 측에선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손님, 계산하셨어요?”라는 보안요원 물음에 A씨는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서 A씨의 신원 조회를 했다. A씨는 수배범이었다. 과거 절도 혐의로 기소돼 두 차례 벌금형을 받았는데 이를 납부하지 않아 수배선상에 오른 것이다. 훔친 물품은 기저귀, 분유, 식자재였다. 출동한 경찰은 “왜 그랬느냐”고 물었고 A씨는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두 달된 신생아가 있는데... 분유가 떨어져서... 애 아빠는 도망갔는데...”

원주경찰서 치악지구대 소속 고탁민(34) 경사는 이 말을 처음부터 믿지는 않았다. 절도범들은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려고 으레 이런 멘트를 한다는 것이다. 작년 말 딸아이를 출산한 고 경사는 그러나 “아기 때문에”라는 A씨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고 경사는 A씨와 함께 그가 살고 있다는 원룸으로 향했다.

A씨가 살고 있다는 원룸은 10평 남짓이었다. 그곳에서선 목 놓아 울고 있는 갓난아기가 있었다. 태어난 지 2개월이 된 남자 아이라고 A씨는 말했다. 방에는 빈 분유통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기가 밥 먹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요.” “일단 조사는 받으셔야 합니다.” 고 경사는 A씨와 아기를 지구대로 데려온 뒤 곧바로 밖으로 나섰다.

고 경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트였다. 그곳에서 분유 한 통을 5만원 돈을 주고 샀다. 지구대로 돌아와 A씨에게 건넸다. 선물받은 분유를 안고서 A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선 모든 범행을 시인했다.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생활하다 나오기도 했고, 애 아빠는 도망갔고, 육아수당으로는 생계 유지에 턱없이 부족하고...아기가 굶어서 어떻게 될까봐 겁이 났어요.”

고 경사는 벌금을 분할 납부할 수 있는 지원 정책 등을 안내하는 등 A씨를 도왔다. 사건 일주일 뒤 치악지구대에 전화가 걸려왔다. A씨였다. 그는 고 경사에게 “당시 경황이 없어서 감사 인사를 못 했다”며 “덕분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 경사는 지난해 12월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굶는 아기를 위해서 그랬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인 이유다. 그는 “조사를 받으러 가더라도 우선 아기 끼니부터 해결해야겠다 싶어서 분유를 건넸다”며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기는 잘못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원주경찰서는 A씨를 지난 3월 말 절도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치악지구대에서 회자되던 고 경사의 분유 선물 이야기는 본서인 원주경찰서, 강원경찰청까지 전해졌다. 강원경찰청은 고 경사가 분유를 구매한 마트에서 폐쇄회로(CC)TV를 받아 강원청 인스타그램에 소개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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