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8 (월)

‘셀프고소-셀프 고소취소’한 조선소 하청업체 대표, 뒤늦은 법정구속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우조선 하청업체 소망ENG 대표, 징역 1년6개월

미리 받아둔 고소취소장에 날짜 임의로 적어 위조

노조 “조선소 하청업체 대표, 반의사불벌죄 악용”

경향신문

민주노총 거제지역지부가 2021년 2월8일 통영고용노동지청 앞에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내하청업체인 소망ENG 이세종 대표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노총 거제지역지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금체불로 인한 형사처벌을 피하려고 고소취소장을 위조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초 고용노동부·검찰은 사용자의 고소취소장 위조를 파악하지 못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청 노동자들의 거듭된 문제제기로 재조사가 이뤄져 해당 대표는 3년 만에 처벌을 받았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차선영 판사는 지난 6월13일 건강보험·고용보험료 횡령, 퇴직금 미지급, 증거·사문서위조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소망ENG 이세종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대표 지시로 고소취소장을 위조한 업체 현장소장·총무는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차 판사는 “이 대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상당한 액수의 보험료를 노동자들로부터 횡령했고, 다수의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했으며, 퇴직금 미지급으로 인한 형사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회사 직원들을 동원해 수십 장의 고소취소장을 위조했다.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20년 5월쯤 자금난으로 업체를 폐업하기로 했다. 당시 노동자 31명의 퇴직금 1억7300만원가량을 줄 수 없자 현장소장·총무에게 자신의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고소위임장을 노동자들로부터 받으라고 했다. 위임장을 받은 현장소장·총무는 그해 6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통영지청에 이 대표를 퇴직금 미지급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통영지청이 체불금품확인원을 발급했고 노동자들은 이를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에 대지급금(옛 체당금)을 신청했다. 대지급금은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범위의 체불임금 등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현장소장·총무는 고소위임장뿐 아니라 고소취소장도 함께 노동자들로부터 받았다. ‘향후 대지급금 내지 퇴직금이 지급되면 그 날짜를 기재한 후 수사기관에 제출할 테니 날짜를 공란으로 한 고소취소장을 미리 작성해달라’고 요구했다.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라 노동자가 사업주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업주는 기소되지 않는다.

이 대표는 그해 7월 대지급금 지급 전인데도 현장소장에게 고소취소장에 임의로 날짜를 적어 검찰에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현장소장·총무는 노동자들에게 미리 받아둔 고소취소장 45장에 ‘6월19일’이라는 날짜를 적어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조선소 하청업체 폐업 시 사용자들이 체불임금은 대지급금으로 떠넘기고, 체불임금에 대한 처벌도 손쉽게 피할 방법이 ‘셀프 고소-셀프 고소취소’”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대지급금 지급 뒤 사용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지만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회수율은 25%가량에 불과했다.

하청 노동자 1명은 당시 고소인 조사 과정에서 ‘고소취소장이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모른 채 회사에 낸 것이고 이 대표의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하지만 노동부·검찰은 나중에 제출된 고소취소장만을 근거로 이 대표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지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문제를 제기하자 재조사 끝에 이 대표가 기소됐다.

이김춘택 지회 사무장은 “이번 사례처럼 고소취소장이 위조된 것인지, 노동자에게 진정으로 고소취소 의사가 있는지 등을 제대로 조사하면 하청업체 대표들이 손쉽게 처벌을 피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2005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임금체불이 반의사불벌죄가 되면서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는 사장이 대지급금을 받게 해줄 테니 고소취소장을 내라고 하면 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 무슨 옷 입고 일할까? 숨어 있는 ‘작업복을 찾아라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