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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LH 임직원 투기 논란

퇴직 전관 수의계약 ‘5년간 금지’됐지만… LH 혁신안 말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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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전관 제한’ 혁신안 마련

업계 “혁신안에도 문제 여전” 지적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주택 설계 업무를 주로 담당하다 2018년 본부장급(1급)으로 퇴직한 A씨는 2019년 1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B설계사무소를 차렸다. 회사를 차리고 첫 2년 동안에만 합계 114억원 규모의 LH 설계용역 3건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그중에는 ‘철근 누락’ 단지 중 한곳으로 알려진 수원당수 A-3BL 공동주택 설계용역도 포함됐다.

경향신문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추자장에서 1일 관계자들이 가림막을 쳐 놓고 기둥의 철골 보강공사를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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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대로라면 B업체는 2023년까지 LH가 발주하는 설계용역을 수행할 수 없다. 2021년 7월 시행된 LH 혁신안에 따라 ‘퇴직한 지 5년이 안된 전관이 대표나 임원으로 있을 경우 수의계약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임직원 토지 투기 의혹을 계기로 LH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자 마련된 대책이다.

하지만 B업체는 혁신안이 시행된 2021년 7월 이후로도 3건의 LH 용역을 더 따냈다. 2021년 고양장항 S-2BL 공동주택 설계용역(25억), 2022년 인천계양 A-1BL 공동주택 설계용역(18억), 2023년 서울 쌍문역동측 도심 공공주택 복합지구 기본 설계용역(18억) 등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혁신안 발표 이후로도 LH과 전관 유착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LH는 문제의 계약이 용어만 수의계약일 뿐 공모를 통해 선정됐기 때문에, 혁신안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전관이지만 특혜를 받아 계약을 따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LH 관계자는 “설계용역의 경우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 상 경쟁에 의한 공모 절차를 거쳐 우선 적격당선자를 선정하고, 이후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며 “법 상 용어가 수의계약으로 되어있어 생긴 오해일 뿐 일반적으로 말하는 ‘특혜성 수의계약’이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국가시행령법 26조1항2호 차목은 ‘공모 당선된 자와 체결하는 수의계약’은 가능하다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LH는 전관예우를 막으려는 제도 개선이 이미 상당부분 진행됐다고도 강조했다. LH 관계자는 “예외조항에 따라 수의계약을 맺은 경우에도 계약주관부서장을 통해 감사원에도 통지를 하게 되어있다”며 “건축설계공모 심사위원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의거해 전원 외부 위원으로 구성하고 심사 전과정도 유튜브로 생중계 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LH 전관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업계 지적은 계속 이어진다. 공모 방식으로 용역사를 뽑는다 해도 LH 공사로 ‘먹고 사는’ 설계업체들의 ‘풀’이 정해져있는데다, 비교적 규모가 큰 회사들은 심의위원과의 학연 등을 내세워 이들을 ‘사전 관리’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LH 설계공모 외부 심의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는 한 건축학과 교수는 “예전처럼 전관들이 대놓고 전화를 하는 일은 확실히 줄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전관예우 관행이 완전히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전관 영향력을 줄이겠다며 외부 심사위원 수를 늘리고 투표제를 도입하니 작은 업체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해 각 사가 잡을수 있는 심사위원의 표 계산을 하는 전략이 새롭게 생겨났다”며 “토론제 공모 역시 상당히 형식적으로 진행되다보니 신생 업체가 참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LH는 ‘이권 카르텔 근절’을 위한 고강도 혁신안을 10월 중 또다시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각종 예외 조항이 존재하는 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철근 누락 단지 중 한곳인 파주운정A34블록 아파트 감리를 맡은 C엔지니어링은 ‘2000만원 미만 계약’이라는 이유로 올해 2월 경쟁 기업 없이 LH 사옥 에너지 진단 용역을 따내기도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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