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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불성실 낙인찍힐라”… 채무자 60%, 3년 넘게 버티다 파산신청 [심층기획-벼랑 끝 몰린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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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새 출발 발목 잡는 도산제도

파산신고 기간 증가 추세

3년 변제시 탕감하는 개인회생 있지만

자영업자 ‘들쭉날쭉’ 수입에 신청 꺼려

“남의 돈 떼어먹는 것 같다” 선입견도

개인파산은 갱생 출발점

취업 제한 등 불이익 차단 규정에도

직업상 결격사유 개별 법률만 200개

“‘파산선고 복권’ 관련 규정 삭제 필요”

채무자 각종 제약 풀어야

“파산정보 기록, 경제범죄와 동일 취급

‘파산선고’ 용어, 형사사건 피고인 연상”

금융거래·신용회복 제한 완화 목소리

“자영업자들이 채무조정 절차에 빠르게 진입해 영업을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개인회생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버티다가 폐업하고 채무상태가 악성화돼서야 도산 법원에 가는 경우가 더 많아 안타깝습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황상진 상담관은 채무조정을 ‘병원 진료’에 비유했다. 몸이 아프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 진찰받아야 하듯 채무를 견디기 어려워지면 빠르게 채무조정제도를 접해 상황에 맞는 도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그는 도산제도에 대한 사회적인 벽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황 상담관은 “사회적 분위기가 도산제도에 대해 ‘빚지면 내가 갚아야 하는 건데 남의 돈 떼어먹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선입견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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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도산법연구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조기에 파산신청을 하는 채무자의 비율은 매년 감소 추세에 있는 반면 채무조정을 받지 않고 버티다 채무가 악성화돼서야 법원을 찾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빚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이들을 빠르게 사회로 복귀시켜 생산력을 높이려는 도산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파탄부터 파산신고까지 기간 점점 길어져

지난해 개인파산 사건 중 ‘파탄원인이 발생한 때로부터 파산신청 시까지 기간’이 3년 이상인 채무자 비율은 60.2%로 절반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파산 신청까지의 기간이 6년 이상 10년 미만인 채무자의 비율도 16.64%에 달한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개인파산을 통해 면책받은 사람을 ‘불성실하다’고 보는 사회적 시선과 차별의 불이익이 꼽힌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파산까지 가는 건 대부분 꺼리고 주위에 알려지길 원치도 않는다. 파산선고를 받으면 먹고살 길이 없어진다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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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제가 끝나면 기록이 보관되지 않는 개인회생과 다르게 개인파산은 면책을 받고 5년간 그 기록이 남는다. 금융거래가 5년간 사실상 제한된다. 또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절차에서 6개월 이상, 개인회생 절차에서 12개월 이상 성실하게 변제했을 경우 서민금융진흥원의 ‘성실상환자 소액금융대출’ 제도를 이용할 수 있으나 개인파산 절차를 이용한 경우 이러한 금융 지원이 불가능하다. 개인파산을 마치고 나면 최저생계수단을 제외한 재산을 전부 채권자에 돌려준 상태가 된다. 직장에 다니는 급여소득자와 달리, 자영업자가 다시 소득 활동을 하려면 자기 기술을 살려 가게를 열어야 하는데, 금융거래가 막히면 저임금 혹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

회생·파산 사건을 주로 다루는 이아무 법무법인 글로리 변호사는 “채권자 입장에서도 채무자가 빚을 갚기 위해 불필요한 추가대출을 하면 리스크가 더 커지기 때문에 채무자가 제때 개인회생등을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적인 개인회생은 월평균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3년 동안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면책해 주는 제도이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려면 납부금을 성실하게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받는 직장인은 소득이 분명하게 파악되지만 자영업자는 수입이 매달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청 서류도 복잡하고 인가결정까지 기간도 길다. 황 상담관은 “개인회생을 신청하려고 폐업을 하고 급여소득자 일자리를 잡아 개인회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갑자기 잡은 일자리는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변제에 실패하고 면책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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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징계 아닌 갱생 위한 절차돼야”

파산선고를 받으면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데도 제약이 따를 수 있다. 40대 A씨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 ‘파산’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사기를 당하면서 2억여원의 빚이 생겼다. 자녀 셋을 키우며 이미 빠듯한 생활을 하던 B씨는 빚을 갚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법원에서 개인파산 신청을 하면 빚을 면책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나 직장 생활에 문제가 생길까 봐 법원을 찾을 수 없었다. 파산선고를 받으면 간호사 자격과 채용에 불이익이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 전면 개정된 의료법은 의료인의 결격사유 규정에서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를 삭제했다. 그로 인해 간호사인 A씨는 파산제도를 이용해도 간호사 자격이 유지될 수 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32조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회생절차·파산절차 또는 개인회생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의 제한 또는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파산선고를 직업상 결격 사유로 규정하는 개별 법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도산사건 경험이 많은 수도권의 한 판사는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으면 공무원, 경비원, 아이돌보미 등이 될 수 없고 이와 같은 법률이 현재 200여개 이상 존재하고 있다”며 “파산은 징계가 아닌 갱생을 위한 절차다. ‘자격상실’, ‘복권’과 같은 표현은 전 근대적 유물”이라며 복권에 관한 규정을 없애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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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제도, 선순환으로 이어지려면

법조계에선 이른바 ‘신용 전과’ 문제 등 개인파산 제도 가운데 새 출발의 발목을 잡는 제약을 완화해 채무자들이 제때 적합한 채무조정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이 적고 부채가 많아 개인회생이 아닌 파산 절차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각종 제한을 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박정만 경기도 금융복지센터장(변호사)은 “금융위원회는 명의도용, 보험사기 등 ‘신용질서 문란행위’에 대해 신용정보를 발생일로부터 5년 내 삭제하도록 규정하는데, 파산선고, 회생 등의 관련 정보도 발생일로부터 5년 내 삭제하도록 한다”며 “이는 개인파산을 경제 범죄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산선고’라는 용어가 형사사건에서의 피고인을 연상시킨다며 용어부터 변경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은 2004년 파산법을 개정하면서 ‘파산선고’를 ‘파산절차개시결정’으로, ‘파산원인’을 ‘파산절차개시원인’ 등으로 용어를 변경했다.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개인 회생에서는 개인회생 개시 결정이라는 용어를 쓴다. 파산도 마찬가지로 파산신청을 해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지 파산신청을 했다고 파산자로 선고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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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한 시민이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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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절차를 이용한 채무자의 금융거래 제한을 완화하자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다수의 도산사건을 맡았던 한 판사는 “도산 제도의 취지는 채무자들이 계속 경제활동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신용을 당겨서 활동할 여력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개인파산절차 이후에도 햇살론 등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 센터장은 “개인파산자는 법원에서 충분한 판단 끝에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면책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면책결정이 내려지면 신용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신 제도의 악용과 남용을 막기 위해 재파산의 경우에는 기존대로 각종 제한을 두자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개인회생의 경우 대출금으로 변제금을 납부할 가능성이 있긴 하다”면서 “하지만 획일적으로 신용회복에 3년 제한을 두는 것은 과도하기 때문에 이를 1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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