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애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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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t on iPhone 14 Pro'
걸그룹 '뉴진스'의 신곡 'ETA'의 뮤직비디오는 이 같은 문구와 함께 시작한다. 친구의 애인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일러준다는 내용의 이 뮤직비디오는 애플의 '아이폰 14 프로'로 촬영됐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아이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비춰진다.
애플이 K팝 스타와 손잡고 노골적인 마케팅을 펼치자 일각에선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뉴진스가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ETA 무대 중 아이폰을 직접 들고 나와 멤버들이 서로를 촬영해주는 무대 연출을 펼친 것을 두고 간접광고 논란까지 불거졌다. 공중파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과도한 PPL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민원까지 접수되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이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서 PPL을 접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유독 논란이 되는 건 인기 절정의 걸그룹과 애플의 만남을 마땅치 않게 보는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간접광고 자체도 문제지만, 같은 소속사의 방탄소년단(BTS)이 삼성 '갤럭시' 홍보모델로 활동하는 가운데 뉴진스가 하필 외산 제품인 아이폰을 홍보하는 게 불편하다는 시선이다.
미디어를 통한 애플의 한국시장 침투
사실 애플이 국내 아티스트들과 손잡고 마케팅을 펼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애플은 '애플 명동'을 오픈하며 K-팝 그룹 '세븐틴'과 함께 최초로 'K-팝 투데이 앳 에플(Today at Apple)' 세션을 선보인 바 있다. 이어 8월에는 래퍼 박재범이 발표한 '바이트' 뮤직비디오의 애니메이션 제작과 편집을 '아이패드'와 '애플펜슬'로 진행했다고 홍보했다. 또 한국 영화의 거장인 박찬욱 감독과는 '아이폰13 프로'로 촬영한 단편영화 '일장춘몽'을 공개하기도 했다.
18일 공개된 박찬욱 감독 단편영화 \'일장춘몽\' 포스터/사진=애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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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더 밀도를 높인 이번 뉴진스와의 협업에서 보듯이 애플의 미디어 침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이전까지 국내 드라마에선 등장인물들이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는 게 당연했지만, 최근 드라마에선 주인공들이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연예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일상에서 아이폰을 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비춰지고, 이런 모습은 인터넷 언론을 통해 다시 유통된다.
애플은 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한 마케팅에 꽤 능숙해 보인다. 애플의 실시간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 플러스'의 오리지널 작품에는 등장인물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대표작 중 하나인 '모닝쇼'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아이폰을 들고 맥북으로 일을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회차당 평균 32개의 장면에서 애플 제품이 등장한다고 한다. 애플의 음원 플랫폼 '애플뮤직'에선 뉴진스 인기곡 'OMG'의 '애플 뮤직 에디션'을 들을 수 있다.
애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기 시작하던 10여년 전만 해도 애플은 한국시장을 홀대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국내 사용자들에게 친숙하고 서비스는 친절하며 제품은 저렴하던 삼성전자 갤럭시에 비해 애플 아이폰은 비싸며 불편한 이미지였다. 아이튠즈 동기화 방식은 사용자들에게 이해되지 못했고, 오직 리퍼만 가능한 AS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갤럭시는 한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고, 나아가 글로벌 선두 자리에 올랐다. 이는 국민적 자랑거리였고, 아이폰을 쓰는 건 사대주의 혹은 겉멋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1020세대에겐 더 이상 애플이 낯설지 않다. 애플의 자연스러운 침투가 이미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애플의 플래그십 매장 '애플스토어'는 올해 '애플 강남' 오픈으로 벌써 5개로 늘어났고, 벌써 6호점, 7호점 후보지가 입에 오르내린다. 애플스토어 어느 매장을 가도 젊은 세대로 늘 북적인다. 거리에선 아이폰은 물론, '애플워치'를 차고 '에어팟 맥스'를 목에 건 젊은 세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애플 제품은 이미 전자기기를 넘어 패션이고 문화다.
29일 애플 강남 내부 디스플레이에서 K팝 그룹 \'뉴진스\'를 홍보하는 모습 /사진=남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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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조사한 결과는 이런 경향을 수치로 보여줬다. 30세 미만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약 85%는 첫 스마트폰으로 삼성전자, LG전자 등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들 중 약 53%는 현재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사준 안드로이드폰을 떠나 자발적으로 아이폰으로 옮겨갔다는 얘기다. 아이폰 환승 이유로는 '성능(32%)'과 '브랜드 이미지(31%)'가 1, 2위를 차지했다.
'이미지'가 승패를 가른다
젊은 세대가 아이폰을 선호하는 이유인 '성능'은 사실 별 게 아니다. 사진이 잘 찍힌다는 것. 사실 하드웨어 성능으로 보면 '갤럭시 S23 울트라' 제품이 더 우수하다. 구체적인 스펙보다는 미디어와 SNS 등을 통해 아이폰으로 찍힌 사진과 영상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아이폰은 카메라 성능이 좋다'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탓일 가능성이 크다. 카메라 성능을 떠나 예쁜 사람을 찍은 사진은 당연히 예뻐보인다.
결국은 성능보단 이미지 싸움이란 얘기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더 이상 '한국인은 갤럭시'라거나 '갤럭시를 쓰는 게 애국'이라는 식의 어른들의 조언은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3050세대 갤럭시 사용자들이 강조하는 아이폰에는 없는 장점, 삼성페이, 통화녹음, USB-C 포트 등도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삼성페이의 대항마 애플페이가 등장했고, 통화녹음은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1020세대에겐 그다지 매력적인 기능이 아니다. 또 올 가을 선보일 '아이폰15' 시리즈에는 USB-C 포트가 달려 나올 전망이다.
/사진=카운터포인트리서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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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사에서 첫 스마트폰으로 아이폰을 구매했던 이들의 92%는 여전히 아이폰을 이용하고 있고, 이들 중 76%는 앞으로도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한 번 굳어진 이미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아이폰을 광고하는 뉴진스를 비난하고 아이폰을 쓰는 젊은 세대를 철없다 치부하는 건 갤럭시 사용자나 삼성전자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닌 듯하다.
'애플엔 없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도 미디어 노출이나 연예인 마케팅 등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아이폰이 뉴진스를 모델로 썼으니 갤럭시는 아이브를 쓰자는 식의 대응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 이유로 젊은 세대가 아이폰을 쓴다면 그 많은 '아미'들은 모두 보라색 갤럭시를 써야 하지 않을까.
현재 삼성전자의 갤럭시 마케팅에서 아쉬운 건 본 걸 또 보는 느낌이라는 점이다. 애플은 박찬욱 감독과 아이폰으로 단편영화를 찍었고, 삼성은 나홍진 감독과 갤럭시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애플은 강남에 '애플 강남'을 세웠고 삼성은 그 옆에 '삼성 강남'을 세웠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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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의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는 말을 빌면, 삼성이 '세상에 없는 마케팅', 혹은 '애플에 없은 마케팅'을 시도하길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갤럭시 Z 폴드5·플립5'의 언팩 행사와 K-컬처 마케팅은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한국적인 것이 가장 글로벌한 것이고, 이는 애플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뽕'을 넘어 세련된 방식으로 폴더블폰의 미학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처럼 삼성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찾아나간다면, 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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