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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전 고성 땐 폭풍에 텐트 쓸려가도 ‘엄지척’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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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잼버리 때보다 훨씬 퇴보한 한국의 행정력

조선일보

고성 잼버리 때도 ‘땡볕’ - 지난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고성 잼버리’ 야영장에서 외국인 대원들이 파라솔을 설치하는 모습. 32년이 지난 2023년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고성 잼버리보다 폭염 대비 미흡과 비위생적 환경 등으로 대회가 파행을 빚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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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고성 잼버리 예산은 98억원, 2023년 새만금 잼버리 예산은 1171억원 이상이다. 새만금이 단순 비교로는 열두 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네 배를 더 썼다. 하지만 고성 세계 잼버리는 ‘88올림픽을 잇는 성공’이라는 극찬 속에 끝난 반면, 새만금 세계 잼버리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쓰고 한국의 체면만 구겼다는 맹비난을 받았다. 32년이 지났지만 우리 행정력, 준비력이 오히려 퇴보한 것이다.

고성 잼버리도 무더운 8월(8~16일) 설악산 울산바위 앞에 야영장을 세웠다. 날씨는 그때도 변수였다. 개회식을 앞두고 폭우가 쏟아졌고, 개영 초반엔 비바람에 전체 텐트 3분의 1이 무너지는 등의 일이 있었다. 그러나 대회 관계자들이 스카우트의 모토인 ‘준비하라’(Be Prepared) 정신대로 문제를 해결해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대회를 끝냈다. 당시 대원들은 “암벽등반과 패러글라이딩, 활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온몸에 흘린 땀을 해풍에 식히던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고 수기에 적었다.

준비 기간도 똑같이 6년이었다. 그러나 쏟은 정성과 집중력이 달랐다.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석원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쌍용그룹 회장)는 1985년 뮌헨 스카우트 총회에서 한국이 제17회 세계 잼버리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설악산 야영장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문해 온갖 변수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당시엔 스카우트연맹과 강원도가 쌍 축을 이뤄 대회 조직위를 꾸렸고, 중앙정부에선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시설 건설과 도로·교통·통신 인프라 확충에 팔을 걷어붙여 진행 속도가 빨랐다. 삼박자의 합이 제대로 맞으면서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 등 국빈급 인사도 야영 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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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은 그늘이 없는 간척지다. 2017년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폭염 대책을 염려하며 “호남에 유치하려면 무주 등 지리산 인근 지역이 적절하다”고 지적했지만 “새만금 개발을 위해서는 잼버리 유치가 필요하다”는 지역 정치인들의 강경 목소리에 묻혔다. 그리고 지난 6년간 리허설 한번 안 해보고 손님들을 맞았다.

감투 나눠 먹기엔 앞장섰다.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총 5인(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지역 국회의원)으로 구성됐다. 5인 공동위원장 체제는 현 정부에서 결정된 것으로, 부처 칸막이 논란 등이 발생할 것을 고려하면 교통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주무 부처인 여가부 장관들도 2017년부터 한 해 1~2회 새만금 현장을 찾는 데 그쳤고, 김현숙 장관이 올해 세 차례 현장을 다녀갔다. 결국 논란이 터지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새만금 현장에서 변기를 직접 닦으며 공무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12일 잼버리 대회가 끝나면 조직위와 전북도, 부안군, 여가부 등 관계 기관과 부처를 상대로 책임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행사 집행을 맡은 전북도 등 지자체에 대한 국무조정실 감찰과 감사원 감사 필요성이 거론되며, 조사 결과에 따라 검찰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여권은 잼버리 파행의 일차적 책임은 집행기관인 전북도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도 여가부 역시 문책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향후 행정감사, 직무감사 또는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전북도가 대회 준비 과정에서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예산을 방만하게 썼는지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는 “책임 소재는 잼버리가 막을 내리는 대로 철저히 따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은 대회 파행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진상 규명을 위한 ‘잼버리 국정조사’를 추진할 방침이다.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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