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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윤미향도 차량 요구... 의원님들 모시느라 ‘개인비서’ 된 외교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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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공관 대상정치인 ‘황제 의전’

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반(反)국가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주최한 행사에,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무소속 윤미향 의원에게 주일 한국 대사관이 대사관 차량을 제공한 것을 계기로 국회의원 해외 방문 때 ‘과잉 의전’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주일 대사관은 외교부에서 국회사무처의 협조 공문을 전달받고 도쿄 하네다공항에 직원을 보내 윤 의원의 입국 수속을 처리해 주고 공항에서 도쿄역 인근 호텔까지 차량을 제공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논란이 된 이후 일부 야당 의원이 항의 시위를 목적으로 일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외교관은 “하네다공항에서 모노레일, 지하철 등을 이용하면 도쿄 시내까지 30분이 안 걸리고 비용도 한국 돈 6000원 정도밖에 안 드는데 의원들이 무조건 대사관 차량을 요청한다”며 “국회 차원에서 요청이 온 것이니 외교부가 이를 가려 받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라고 했다.

유럽의 한 대사관은 올해 들어 ‘한국 손님’맞이에 분주해졌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으로 가는 최단 항로가 막히자 주재국이 ‘환승 허브’로 떠올랐는데, 유럽·아프리카로 가는 여야 국회의원과 장관 등 정부 고위급들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외교관은 “현지 인사를 만나거나 주재국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짧은 시간을 공항에 머물 뿐인데도 이른바 ‘환승 의전’을 바라는 정치인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 경우 외교관들은 주재국의 허락을 받아 공항 안으로 들어가, 환승하는 정치인들을 안내한다.

우리 정부가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이후 ‘지지 교섭’을 목적으로 한 의원들의 해외 출장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런데 통상 5인 미만이 상주하는 아프리카·중남미의 ‘초미니 공관’들은 한국 의원단 방문 주간엔 이를 전후해 약 2~3주 동안 업무가 마비된다고 한다. 공적인 활동뿐 아니라 주재국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업무 시간 외에도 대사관의 조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부 의원은 기념품 구입이나 관광지 방문 같은 개인 일정을 소화하면서 통역을 위해 대사관 직원을 대동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한 중남미국 공관에선 정부 고위급 인사가 음식·일정 등을 문제 삼으며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려 외교부 안팎에서 ‘갑질’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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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참석한 윤미향과 김남국 - 무소속 윤미향(맨 왼쪽) 의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윤 의원 옆으론 무소속 김남국(가운데) 의원과 진보당 강성희 의원.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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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의원 사례처럼 국회의원의 개인적 해외 방문을 국회와 정부가 관행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어떤 행사에 참석하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으면서, 이번 기회에 재외공관의 의전 지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외공관의 인력이 한정돼 있고 고(高)환율로 예산 운용도 빠듯해진 상황에서 언제까지 구시대적 악습에 외교 자원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해외 일정을 진행하는 것처럼 ‘국회의원도 주로 국회사무처 지원을 받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외교부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정치인이 외국을 방문하면 공적·사적 목적을 따지지 않고 의전 등 조력을 제공해 왔다. 상당수 재외공관이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치인 가족에게도 의전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 전직 재외공관장은 “비행기가 도착하면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공관 직원들이 기내 안으로 들어가 여권과 짐을 들고 나왔다”며 “정치인 가족이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시간 지체 없이 ‘프리패스’로 걸어 나올 수 있어야 성공한 의전이었다”고 했다. 비행기 좌석 업그레이드, 귀빈실이나 VIP 라운지 사용 같은 특혜도 관행적으로 제공됐다.

일부 정치인의 갑질과 ‘황제 의전’이 논란이 되고 청탁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재외공관의 과잉 의전이 상당 부분 사라진 것은 맞는다. 2014년 7월부터 시행 중인 외교부 예규 ‘국회의원 공무국외여행 시 재외공관 업무협조지침’을 보면 “재외공관이 공식 일정에 한해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국제회의 참석, 특별사절 임무 수행 등 ‘공무국외여행’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7가지로 분류해 놨다. 하지만 예산 등 국회가 외교부를 상대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의원 요청에 관행적으로 협조해 온 측면이 크다. 국회는 지난해 8월 의원 외교를 내실화하겠다며 국회의장 주도로 ‘의원 개별 외교 활동에 대한 지원 계획’을 만들어 방문국 주요 정보 제공, 통·번역 협조 요청 등을 하고 있는데 이게 과잉 의전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의 해외 활동 지원 내실화를 위해 내부 지침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과잉 의전의 원인은 외교관들에게도 일부 있다. 한 외교부 직원은 “승진에 목마른 외교관들은 고위급의 방문을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 외교부 내 ‘의전의 귀재‘로 꼽히던 일부 외교관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고위직까지도 올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상당수 의원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외국을 찾았는데 일부는 여당 의원 출신인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행을 담당한 특정 외교관을 칭찬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어떻게든 테마를 잡아서 고위급 방문을 성사시키는 것이 공관장의 역량으로 평가받는 분위기”라고 했다. 방문이 성사되면 대사가 관저에서 만찬을 베푸는 것은 물론 국회의원이 묵고 있는 숙소까지 찾아가 식사를 대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국회에서 외교부에 지원 요청을 하면 대사관 입장에서는 지원을 안 나가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국회 차원에서 의원들의 비공식 해외 활동에는 일절 지원 요청을 하지 않는 게 맞고, 의원들 역시 특권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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