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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이슈 연금과 보험

이용하 前 국민연금연구원장 “국민연금 개혁, 재정 안정화보다 분배시스템 초점 맞춰야”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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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고, 같은 금액 늦게 받는’ 개혁안

차기 대선 앞두고 실현가능성 낮아

보험료율 계속 올려도 재정안정 안돼

15%로 인상 자체도 불가능… 효과없어

소득 축소신고하거나 아예 안낼 것

국민연금만으론 노인빈곤 해결못해

기초연금과 함께 연금재구조화 필요

대통령·정부 개혁 의지가 가장 중요

재정·빈곤 문제 균형있게 해결할

개혁안 만들어 국회·국민 설득해야

국민연금 개혁이 화급한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현 추세라면 2055년이면 연금을 지급할 돈, 이른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최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더 내고, 같은 금액을, 늦게 받는’ 개혁 밑그림을 내놨다.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6%포인트씩 올리되 수급 연령은 66~68세로 늦추자는 것이다. 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재정 안정화’에 방점이 찍혔다. 노령화로 인해 5월 말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는 1년 전보다 43만명이나 증가했다. 하지만 가입자는 2225만4000여명으로 7만명가량 감소했다.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미래도 불확실하다.

지난 5일 만난 이용하 전 국민연금연구원장(전주대 초빙교수)은 “국민연금 개혁은 단순히 재정 안정화가 아닌 분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갈 시기를 늦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일보

이용하 전 국민연금연구원장이 지난 5일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만으로 기금고갈과 노인빈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대신 기초연금 혜택을 넓히는 연금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며, 이는 대통령의 개혁의지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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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안을 평가하자면.

“노동력 감소 부분과 출산율·사망률 등 전체 인구 변화가 다 반영된 것이다. 추계 과정은 신중하게 한 것 같다. 사실상 기금 고갈 시기 등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 재정계산위가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실제 본격적 논의는 총선 이후가 될 것이다. 결국 연금개혁 문제는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질질 끌면서 원점으로 갈 것이다.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안도 문제가 많다.”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화시킨다는 것 자체가 임시방편이다. 아무리 보험료율을 인상해도 재정 안정은 안 된다. 무엇보다 보험료를 15%로 올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효과도 없다. 9%인 우리나라 보험료가 다른 나라의 반이라고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 독일, 일본 등은 보험료율이 20%에 이르지만 직장가입자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자영업자가 10%밖에 안 되지만 우리나라는 절반이다. 보험료를 15%, 20% 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 9%에서도 지역가입자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 보험료를 올리면 오히려 소득을 축소신고하거나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공적연금은 사적연금과 다르다. 사적연금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것이라 국가경제나 전체 가입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적연금은 보험료로 단순히 수지만 맞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경제나 소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장·단점 분석 등에 대한 논리가 하나도 없다. 국민이 수용할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커녕 이렇다 할 논거 없이 숫자만 맞추는 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산수다. 그게 과연 개혁안인가.”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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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인상으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국민연금은 자기소득과 전체 가입자 소득을 반영한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수입평균인 A값이라는 게 있다. 지금 280만원 정도 된다. 공무원은 530만원이다. 민간 근로자가 공무원보다 월급이 적은 게 아니다. 지역가입자가 소득을 낮게 신고해서 그런 거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게 아니라 A값이 낮아 연금액 차이가 나는 것이다. 소득에 따른 정당한 보험료를 안 내고 있는 마당에 더 올리는 순간 다 떨어져 나간다. 단순히 재정적 측면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현 국민연금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건가.

“1988년 도입 당시엔 사업장의 가입자 소득 파악이 쉬웠다. 분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던 시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도시지역 사업장 가입자가 2배 늘면서 분배시스템이 망가졌다. 국민연금은 가난한 사람에게 많이 주고 부자에게는 덜 주는 제도다. 그런데 지금은 1을 내고 2를 받아가는,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 시스템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가입하지 않고 중상류층만 가입한다. 소득수준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이런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느냐부터 고민해야 한다.”

―고갈 시기를 늦추는 건 필요하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인식과 방법부터 잘못됐다. 재정안정에 매몰돼 국민연금이 미래세대에 부담을 준다는 것만 강조한다.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빚만 남기는 게 아니라 인적·물적자본 등 자산도 남긴다. 9%를 내고 40% 받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미래에 못 받는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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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복지부차관이 ‘국가지급 보장 명문화’를 언급했다.

“국가에서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명문화한 나라는 없다. 공무원연금과는 다르다. 공무원연금은 국가가 적자 시 재정으로 보전하도록 돼 있다. 연금법 자체가 지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국가지급 보장 명문화는 현실성이 없다. 정부가 오는 10월 단일안을 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그럴 용기도 없다. 연금은 정치다. 전체 국민의 분배와 관련돼 있어 섣불리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기금의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게 가능할까.

“국민연금 기금 투자수익률을 0.5%포인트, 1%포인트 올리는 2가지 안이 담겼다. 수익률을 변수로 만들어 놓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1100조원으로 GDP의 50%에 이른다. 이런 어마어마한 기금을 어떤 조직이나 전문인력이 굴려도 수익률을 올린다는 건 어렵다. GDP 상승률 정도만 수익을 내도 장기적으로 잘하는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개혁이 필요한가.

“연금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현재 소득대체율(개인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이 12%인 기초연금(40만원)을 15%로 높여 국민연금 수급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국민기초연금으로 통합하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것이다. 연금 15%를 조세화시켜 현행 40%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추면 수익률 향상과 보험료 인상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재산소득 합쳐 하위 70%에게만 기초연금을 준다. 일각에서 대상 축소 등 선별적 지원을 언급하는데, 그건 국민연금을 대부분 잘 받는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세금 안 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기초연금을 가난한 사람에게만 준다고 생각하는 건 없애자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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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 부담은 어떻게 하나.

“누군가는 부담해야 할 일이다. 세금을 내고 받는 기초연금과 달리 국민연금 보험료는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부과한다. 국가전체 파이는 그대로인데 인구 감소로 근로소득자는 줄어든다. 작아지는 베이스(노동소득)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세금은 재원이 넓다. 많든 적든 간에 노인들도 부담한다.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해서 세원을 확보하고, 혜택도 골고루 돌아가야만 국민연금이건 기초연금이건 장기적으로 유지가 가능하다.”

―증세로 가야 한다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금 내는 사람은 줄지만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소득이 주는 대신 자본소득이 커진다. 고령화시대 미래 재원의 위험부담을 보험료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재원의 위험분산 차원에서 기초연금의 역할을 늘려 주는 게 옳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줄이고 기초연금을 올리면 된다. 국민연금 재정도 안정되고, 현 세대나 미래세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지난해 기초연금 예산이 20조원이다. 산술적으로 10∼20년 증세 안 해도 충분히 유지가 가능하다.”

―왜 개혁이 지지부진한가.

“학자, 정치인 등 모두 기금이라는 것에만 눈이 멀어 있다. 기금을 지키려고 하는 한 국민연금은 노인빈곤 문제 해결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정부의 단일안이 나올 리 없다. 정부가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재정안정론과 소득보장론 중 1차적으로는 노인빈곤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국민연금 하나로 기금도 지키고 빈곤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

―개혁안에서 소득대체율 부분이 빠졌다.

“큰 의미가 없다. 현재 40%인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린다고 하면 물론 재정안정론자 입장에서 보면 기금 사정이 안 좋아지니 좋아할 리 없다. 그렇더라도 1인당 10만∼20만원 더 준다고 노인빈곤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40∼50년 후 미래세대가 혜택을 보겠지만 당장 연금을 받는 세대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 정부가 보험료를 12∼15%선에서 올리는 안을 제시할 것이다. 기금 고갈을 늦추는 효과도 미미할뿐더러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강화도 불가능해진다. 결국은 기초연금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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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주체는 누구인가.

“정부와 대통령이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자문기구일 뿐이다. 정부가 재정문제와 빈곤문제를 균형 있게 해결할 안을 만들어 국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데 굳이 국회가 나서겠는가. 과거 정부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절실한 문제를 공감하는 정부가 돼야 한다. 국회가 나서는 건 맞지만 중심은 정부가 잡아줘야 하다. 논리가 타당하면 국회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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