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힐리스 사주겠다던 아빠, 약속도 못 지키고 먼 길 떠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구성원들이 9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를 앞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을 마친 후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11.09. 조태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린 김주익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다. 1970년대 초 강원 태백의 어느 마을, 김주익의 집 앞은 함께 공을 차자며 찾아온 동네 또래 친구들로 매일 붐볐다. 가난한 살림에 누가 될까 봐 부모님에게 빵을 사달라는 말도 못 하던 김주익을 작은누나는 “티 없이 맑고 순박한 아이”로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2년 부산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에 취업하고, 단칸방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뒤로도 김주익은 인기쟁이였다. 동료들은 그를 노조위원장으로 뽑았다.

한진중공업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매섭게 휘두르던 때였다. 당기순이익이 늘었는데도 회사는 2002년 650명을 정리해고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한진중공업은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로 손해를 봤다며 김주익과 간부들에게 7억4000만원의 손해배상가압류를 걸었다. 당시 세 아이의 아빠였던 김주익의 실수령 월급은 13만원 수준이었다.

경향신문

금속노조 조합원이 9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를 앞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2023.11.09. 조태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돈줄’로 압박하는 한진중공업에 노동자들은 또 분노했다. 김주익은 2003년 6월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그를 지키겠다며 동료들도 지상에 천막을 쳤다. 한진중공업은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 150억원의 손배·가압류를 압박했다.

모두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추석 즈음인 2003년 9월9일. 김주익은 크레인 위에서 유서를 쓰고 있었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배·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 (한다)”라며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김주익은 이어서 이렇게 썼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힐리스인지 뭔지를 집에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 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여보.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서야 불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호칭이 되었네. 그동안 시킨 고생이 모자라서 더 큰 고생을 남기고 가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당신은 강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서 잘 해주리라 믿어. 그래서 조금은 편안히 갈 수 있을 것 같애. 이제 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먼저가신 부모님과 막내누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럼 모두 안녕.”

경향신문

바퀴 달린 운동화 ‘힐리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일 뒤, 김주익의 둘째 딸(당시 10세)은 하늘 위로 편지를 보냈다.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께. 아빠 그런데 내가 일자리 구해줄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 돼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 울아빠도 보잖아요.” 여덟 살 막내아들도 편지를 썼다. “아빠, 우리 어젯밤에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어요. 그래서 촛불을 켜고 그림자 놀이도 하고 핸드폰 벨소리를 듣고 엄마랑 누나랑 형아랑 다같이 잤어요. 그래서 무섭지도 않았어요. 아빠, 빨리 오세요.”

고공농성 129일째인 2003년 10월17일 김주익은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향신문

김주익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 목숨을 끊은 지 3일째인 2003년 10월19일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추모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직도 노동자 죽었다는 뉴스를 못 봅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노동자가 김주익처럼 기업으로부터 손배·가압류를 당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6개월치 월급을 모조리 압류당한 두산중공업의 배달호는 2003년, 고장난 수도꼭지를 고친 뒤 아내 앞으로 45만원이 든 봉투를 남기고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쌍용자동차에서는 손배·가압류로 노동자와 그 가족 3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쟁의행위를 이유로 한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10월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 79%는 ‘파업 등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해 파괴와 폭력을 동반하지 않은 경우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법안(노조법 3조)’에 동의했다.

김주익이 숨진 지 20년이 지난 9일,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고 사용자의 정의를 확장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이날 오전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는 손배·가압류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경향신문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9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를 앞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2023.11.09. 조태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억원의 손배소를 당한 김진아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 수석부지회장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노조를 무력화하는 데 사용된 손배는 부당노동행위”라며 “손배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길거리에 내몰고 수많은 가정을 파괴했으며,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우리 KEC지회 조합원들이 겪었던 고통을 다른 노동자들이 겪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는 이날 김주익의 작은 누나가 보낸 편지를 대신 읽었다.

“제가 정치는 잘 모릅니다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손배·가압류는 정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는 지금도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만 보면 텔레비전을 끄고 밖으로 나갑니다. 부산에 살면서도 동생이 죽은 영도에 가지 않았습니다. 올해로 꼬박 20년이 됐는데도, 어제 일처럼 눈물이 계속 흐릅니다. 제발 우리 주익이 같은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없도록 이번에 국회에서 법이 잘 통과됐으면 좋겠습니다.”

노란봉투법은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은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거듭 반대 의견을 밝혔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 독립언론 경향신문을 응원하신다면 KHANUP!
▶ 나만의 뉴스레터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