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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최창일은 정말 ‘간첩’이었을까…법원, 50년 만에 재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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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창일씨. KBS <다큐인사이트 - 스파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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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때 재일동포 간첩으로 지목돼 옥살이한 고 최창일씨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을 결정했다. 최씨의 딸이 뒤늦게 아버지의 사건을 알게 돼 재심을 청구한 지 3년10개월, 최씨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49년 만이다.

2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 제13형사부(재판장 김우수)는 이른바 ‘재일동포 간첩사건’ 주범으로 지목돼 징역을 산 고 최창일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해 지난 16일 재심을 결정했다. 앞서 2020년 1월2일 최씨의 딸 최지자씨(42·나카가와 도모코)는 “고인은 영장 없이 불법으로 구금되고 가혹행위를 당하여 공소사실에 대해 허위로 자백하게 됐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최씨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자원개발공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조국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가 육군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에 붙잡혔다. 보안사는 간첩 활동을 하려 국내에 입국한 것 아니냐고 최씨를 추궁했다. 최씨의 신문조서에는 ‘북한에서 지령을 받았다’ 등의 자백이 담겼으며 1974년 법원은 이를 근거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는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될 때까지 약 6년간 옥살이를 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199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1970~1980년 북한에서 내려오는 간첩이 줄어들자 국내 정보기관은 일본을 경유한 북한의 ‘우회 침투’에 주목했다. 모국 유학 등을 꿈꾸며 국내로 들어온 재일교포 젊은이들 상당수가 불법 연행과 고문 등을 당하며 간첩으로 조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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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자씨가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 최창일씨와 함께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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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최씨 사건이 형사소송법 제420조7항(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에 해당해 재심 개시 조건에 부합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최씨는 1973년 5월28일쯤 보안사로 연행돼 조사를 받기 시작해 8월4일까지 (2개월6일간) 영장 없이 구금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행위는 당시 형법 타인의권리행사방해죄,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어 “보안사 수사관들의 죄는 공소시효(5년)가 완성돼 유죄판결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씨는 군인이 아니었으며 그의 혐의도 당시 군형법이 정한 죄에 해당하지 않았으므로 육군 보안사 수사관들에게는 피고인을 수사할 권한이 없었다”고 했다. 또 “최씨의 진술서는 76쪽, 피의자신문조서는 104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조서에 기록된) 1973년 7월23일과 24일 각각 하루 동안 작성된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최씨 사건은 대법원이 2005~2006년 사법부의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반성할 목적으로 추려낸 자료 ‘과거사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재검토 자료 224건’ 목록 중 52번째에 포함돼 있다. 그의 딸 최지자씨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신청 마감일인 지난해 12월9일 신청서를 접수해 진화위에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지자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법원은 224건의 재검토 사건을 분류해놓고도 유족들에 알리지 않아 재심 청구를 더 빨리할 기회를 놓치게 했으며, 재심 청구 이후에도 4년 가까이 시간을 끌었다”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속히 고인의 명예회복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국가폭력 224건③] 재심 생각 못하고 살아온 수십 년…재심 청구해도 ‘기다리라’는 법원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8260600011#c2b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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