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發 ELS 충격파]
상장사 70% 이상이 中 본토 기업… 中 부동산 침체 등에 증시 직격탄
홍콩 통화, 美 달러 연동된 ‘페그제’… 美 따라 금리 올리며 유동성 메말라
“中 경기회복 더뎌… 보수적 대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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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발 악재가 겹치면서 홍콩 증시가 역사적 침체에 빠졌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지수가 20% 가까이 빠지면서 글로벌 주요 증시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홍콩 당국이 세금을 깎아주며 증시 부양에 나섰지만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홍콩, 전례 없는 증시 침체
올해 초 20,000 선에서 출발했던 홍콩 항셍지수는 급락을 거듭해 16,000 선으로 내려앉았다. 국내에서 판매된 주가연계증권(ELS)이 주로 기초자산으로 삼는 H지수의 올해 하락률도 18.8%에 달한다. H지수는 최근 들어 특히 하락 폭이 크다. 13일에도 전날보다 1.13% 떨어진 5,550.90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23일 이후 20일 만에 10%가 빠졌다. 내년 만기를 맞는 은행권 홍콩 ELS 규모는 13조 원에 이른다.
이는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의 주가지수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글로벌 증시 호황기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경제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보다 훨씬 나쁜 성과다. 홍콩 증시는 4년 연속 하락세로 1969년 항셍지수가 등장한 이래 최장기 하락이다.
홍콩 증시는 최근 인도에도 따라잡혔다. 세계거래소연맹 집계에 따르면 11월 말 인도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3조9890억 달러)이 홍콩(3조9840억 달러)을 추월했다. 세계 7위 주식시장 지위를 인도에 뺏긴 것이다. 지난달 28일엔 항셍지수가 대만 자취안지수에 추월당하기까지 했다.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홍콩 증시의 부진은 기업공개(IPO)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홍콩의 IPO 규모는 51억 달러로 10년 평균치(310억 달러)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닷컴 버블 붕괴 직후였던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 중국·미국발 악재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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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증시는 상장사 중 70% 이상이 중국 본토 기업이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이 제로 코로나에서 벗어나면서 홍콩 증시가 수혜를 볼 거란 전망이 나왔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채 위기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비구이위안 같은 중국 부동산 개발사, 알리바바·메이퇀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상장된 홍콩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알리바바는 알짜배기 사업부인 클라우드 부문의 분사·상장 계획을 철회해 홍콩 증시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요한 반도체를 공급받기 어려운 게 철회 이유였다.
중국과 별개인 구조적 요인도 있다. 홍콩은 통화(홍콩 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하는 페그제를 채택한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홍콩도 따라서 금리를 16년 만에 최고 수준인 5.75%까지 올려야만 했다. 가뜩이나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관련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홍콩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유동성을 더 메마르게 만들었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이익은 중국 본토 경기, 이자율은 미국 통화정책 영향을 받는 특이한 구조”가 홍콩증시 부진의 이유라고 설명한다. 중국과 미국 시장 악재가 겹친 셈이다.
● 내년엔 반등할 수 있나
올 10월 홍콩 정부는 증시 부양을 위해 2021년 인상했던 주식 거래세를 원상 복구(0.13%→0.10%)하는 세금 감면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주식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올해에만 중소형 증권사 30곳이 문을 닫았다. 홍콩 브라이트스마트증권의 에드먼드 후이 최고경영자는 블룸버그에 “홍콩의 증권사 폐쇄와 해고 물결은 본 것 중 최악”이라고 말했다.
2020년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한 것도 홍콩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무디스는 6일 홍콩의 신용등급 전망치를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본토와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더 긴밀해졌고, 국가보안법으로 자율성이 약화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홍콩 증시가 내년에 반등하려면 미국과 중국발 악재가 해소돼야 한다. 일단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이 끝나간다는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를 예단하긴 어렵다. 중국 경제는 정부가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회복 속도가 아직 더디다. 특히 두 달 연속 소비자물가지수가 하락해 소비 위축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달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미중 갈등이 해소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증권사들은 눈높이를 낮춰 잡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내년 상반기 H지수의 구간을 5,000∼7,000으로 제시했다. NH투자증권 박인금 연구원은 “중국 경기 회복 강도가 약하다”며 H지수의 하한선을 5,400으로 전망했다. 삼성증권 전종규 연구원은 H지수 5,500을 하단으로 제시하면서도 “보수적으로 대응하라”고 당부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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