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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단독] '이틀 밤샘 허용' 대법 선고 날, 피해자 산재보상도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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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일러스트=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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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주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이틀 밤샘’도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한 같은 날 해당 사건 피해자 A씨의 산업재해 보상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A씨는 ‘크런치 모드’(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는 집중 근로)로 하루 15시간 이상 항공기 시트를 세척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근무지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는 지난 7일 A씨 모친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유족급여는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에게 지급되는 급여다.

같은 날 동일한 재판부는 A씨의 사업주 B씨가 A씨에게 장시간 연장 근무를 시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원심을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주 12시간’ 한도인 연장근로 시간을 계산할 때 1주간 총 근무시간에서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을 빼는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산식을 제시하며 A씨가 총 근무시간은 52시간보다 적지만 사흘 또는 나흘간 몰아서 일을 한 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리면서다. 당초 A씨에 대해선 “B씨가 운영하는 항공기 객실 청소업체에서 2013년 9월 28부터 2016년 9월 21일까지 근무하다가 2016년 11월 14일 사망으로 퇴직했다”고만 이 사건 1심 판결문에서 적혔을 뿐, 사망의 배경은 언급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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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등 제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4월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폐기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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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A씨 모친이 산재 여부를 다툰 사건에선 실제 A씨가 했던 중노동의 성격과 사망 경위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A씨는 김포공항 옆 지하 사업장에서 항공기 좌석용 시트를 세척하는 일을 했다. 이 사업장엔 여성 근로자 26명과 남성 4명이 있어, 힘쓰는 일은 A씨 등 남성 근로자 몫이었다. A씨가 담당했던 업무는 그중에서도 세탁을 거쳐 젖어 더 무거워진 시트를 건조기에 넣고 돌린 후 다시 꺼내는 일이었다. A씨는 통상 사나흘씩 12시간 이상 연속근무 후 하루 휴무를 얻는 방식으로 장시간 집중적으로 근로했다. 특히 사망 직전인 2016년 8월엔 평균 주 5일을 하루 14~15시간씩 일했다. A씨는 곧잘 폭음했고 피로는 더욱 쌓여갔다.

A씨는 같은 해 9월 21일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을 이어나갔다. 이어 오후 8시경 사업장 내 남자 샤워실 바닥에 웅크리고 누운 채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발견돼 병원에 후송됐다. A씨는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11월 14일 사망했다.

A씨의 사인은 뇌농양이었다. 뇌농양은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뇌 조직 내로 침투한 곰팡이에 의해 발병하는 감염 질환이다. A씨 모친은 “A씨가 사업장에 입고된 오염된 세탁물과 유해한 작업환경으로부터 곰팡이균에 감염됐다”며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세균이 뇌까지 침투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지급 결정을 했다. A씨가 앓고 있던 알코올성 간 질환을 감염을 악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본 것이다

이어진 소송에서도 판단은 같았다. 원심은 “A씨는 고용노동부 고시(업무상 질병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서 정한 만성 피로 기준에 거의 육박하거나 초과할 정도로 과다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상 망인의 업무상 피로는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러한 사정만으로 망인의 업무상 과로와 뇌농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진료기록 감정의도 “망인의 평소 과로도 면역력의 약화에 한몫을 한 상태에서 환경적인 요인 및 개인적인 감염의 칵테일 효과로 뇌농양이 유발되었다고 본다”면서도 “여러 가지 소인이 포함된 사안이므로 그중에 기여도가 높은 부분이 발병 원인으로 봐야 하고, 가장 유력한 원인은 알코올성 간 질환”이라고 했다. 대법원도 같은 논리로 A씨 모친의 청구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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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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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대법원은 ‘주 12시간’ 한도 계산을 일별 초과근무 시간을 합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간 총 근무시간이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된다는 판결을 했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육체적 한계를 넘는 노동을 금지하기 위해 일 단위로 법정 근로시간을 정한 기존의 법 취재를 무너뜨린 것”(민주노총)이라고 반발했다. 그런데 이 사건 피해자인 A씨의 죽음에서도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근로가 핵심 쟁점이 됐던 셈이다.

현민지 노무사(노무법인 이산)는 “이 사건에서 문제된 뇌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주된 원인이 명확하게 장시간 근로가 아닌 이상 산재를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법원은 직접적 사인만을 기계적으로 따진다. ‘크런치 모드’ 도중 죽음이 발생해도 그 인과관계 입증은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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