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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 남북관계 선언···화해·통일 대신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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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지향 특수관계’서 ‘국가 대 국가’ 대전환

신냉전 현실에 ‘탈냉전’ 기본합의서 체제 파기

“남북관계, 회복 불가능 파탄 상태 도달” 평가

전쟁 발발 가능성 기정사실화해 “초강경 대응”

통일부 “새해 한반도 긴장 조성 가능성 농후”

경향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6~30일 평앙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내년도 투쟁 방향’을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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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은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의 종언을 의미한다. 대신 김 위원장은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외치며 남한을 전쟁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올해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으로 우발적 충돌 가능성마저 커진 한반도 정세는 새해 극한의 군사 대립으로 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김 위원장이 지난 26~30일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밝힌 신년사격 연설의 핵심은 남북관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규정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은 31일 보도에서 “불신과 대결만을 거듭해온 쓰라린 북남관계사를 냉철하게 분석한 데 입각하여 대남 부문에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할 데 대한 노선이 제시되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장구한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 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북남관계는 더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국가 대 국가’ 선언은 분단 이후 냉전 속에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으로 대화·협력을 모색해온 남북 ‘특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탈냉전기인 1991년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의 평화 통일·화해 원칙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국가정보원 유관 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기존의 ‘우리민족끼리’ 등 민족 기반의 대남 접근방식을 청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올해 중순부터 감지돼왔다. 김 위원장이 2022년 12월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데 이어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7월 담화에서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호칭해 비난했다. 이후 북한 당국은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으로 표현해왔다. 북한이 지난 7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거부하며 내세운 주체는 대외 관계를 담당하는 외무성이었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념 전환이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대 남조선의 위정자들이 들고나온 ‘대북정책’, ‘통일정책’들에서 일맥상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의 ‘정권 붕괴’와 ‘흡수 통일’이였다”고 밝혔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며 “정권 종말”을 시사하는 등 대북 군사적 압박에 몰두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도 비난했다.

경향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6~30일 평앙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내년도 투쟁 방향’을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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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남북 대화·교류·협력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는 “우리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 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강조했다. 남한도 지난 9월 남북 대화·교류·협력을 담당하는 통일부 조직을 사실상 해체한 상태다.

김 위원장은 선대 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의 통일 정책을 비판하기 이르렀다. 김 위원장은 “10년도 아니고 반세기를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가 내놓은 조국 통일 사상과 노선, 방침들은 언제나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것으로 하여 온 민족의 절대적인 지지 찬동과 세계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북남관계는 접촉과 중단, 대화와 대결의 악순환을 거듭해왔다”고 자평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선대의 통일정책 유훈까지 포기하는 선언을 한 점은 남북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파탄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주적 통일 상대인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자기모순을 제거하고 핵·미사일 고도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대 국가 구도를 설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대남 정책의 핵심으로 ‘전쟁 준비’를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 행동에 보조를 맞추어나가기 위한 준비”를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적들이 무엇을 기도하든 그를 초월하는 초강경 대응”을 공언했다.

이에 따라 새해 한반도 정세는 악화 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적대적 국가’ 남한과 미국을 겨냥한 핵·미사일 개발과 각종 도발적 군사 행동에 몰두하고, 이를 억제하려는 한·미가 전략자산 전개와 각종 대규모 연합훈련을 단행하는 악순환은 더욱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부는 이날 “향후 시기를 저울질하며 전략·전술적 도발을 감행하는 등 한반도 긴장 조성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최고지도자가 직접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언급한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과시성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남북합의 전면 파기 선언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홍 위원은 “북한이 특히 한·미 ‘핵 작전 연습’에 맞대응하는 작전을 구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새해 11월 열릴)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차기 행정부에 ‘비핵화 불가, 불가역적 핵 보유’를 각인시키고자 핵·미사일 고도화 과시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전망했다.

남북 통신연락선마저 차단된 상황에서 우발적 충돌 우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임 교수는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전쟁 위기관리가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밝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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