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짓고 보자" 선입주 후교통 탓 '교통지옥'
3기 신도시 '선교통' 내걸었지만 사업 지연 우려
"난 어차피 경기도민이니까 어딜 나가도 서울 나들이다. 그러니까 약속 장소 편하게 정해라. 내가 그러긴 했어. 그래도 적어도 경기도 남부냐 북부냐 동부냐 서부냐 이건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니?"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대사 중)
지난 2022년 종영한 TV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등장인물 염기정(이엘 분)의 대사다. 작중 경기도 산포시에 사는 주인공이 경기도민의 교통난을 토로하자 시청자들이 뜨겁게 공감했다. 외곽뿐만 아니라 신도시에 사는 경기도민 역시 '교통 해방일지'를 꿈꾸는 비슷한 처지다.
충분한 광역교통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아파트부터 공급한 1·2기 신도시와 달리 현재 추진되는 3기 신도시는 '선교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교통지옥에서 예외가 아닐 듯하다. 최근 수도권 대중교통 지원대책이 속속 나오면서 희망이 비치는 듯하지만 뜯어보면 '불협화음'은 여전하다. 서울에서 내몰려진 비(非)서울 수도권 주민들은 언제 출퇴근난에서 벗어날까?
신도시 교통 대책 및 부작용 /그래픽=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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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지구 곳곳 교통 미흡…3기 신도시도 늦어져
일산과 분당, 평촌, 중동, 산본 등 1기 신도시는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1989년 탄생했다. 신도시 개발 이후 일산선, 분당선 등이 개통됐지만 아직까지도 주민 수요와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차역이 많고 곡선화된 노선 탓에 서울까지 이동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직도 자가용이나 광역버스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2003년께 집값 상승으로 주택시장 안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2기 신도시가 등장했다. 판교(성남), 동탄1·2(화성), 한강(김포), 운정1·2(파주), 광교(수원·용인), 검단(인천), 위례(성남·하남·송파), 옥정(양주), 고덕(평택) 등이다. 판교와 위례를 제외한 대부분이 1기 신도시보다 서울에서 먼 만큼 국토교통부는 교통대책 청사진을 함께 제시했다.
하지만 제때 교통편이 마련되지 못했다. 동탄2신도시는 2015년 입주를 시작했으나 가장 유력한 출퇴근 수단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올해가 돼서야 개통을 앞두고 있다. 위례의 경우 2013년 입주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대표적 교통대책이었던 위례신사선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이러한 '先(선)입주 後(후)교통'으로 신도시 주민들의 아우성이 심해지자 2018년 발표된 3기 신도시는 '선교통 후입주'를 표방했다.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에서 '선교통' 실현을 위해 교통대책을 미리 수립했다. 지구지정 후 교통대책을 수립하기까지가 평균 11.4개월로 2기 신도시(24.9개월)보다는 빨라졌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교통 기반시설 마련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강기 한국교통연구원 광역교통평가연구센터장은 "1기 신도시는 당초 예상했던 교통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했고,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2기 신도시는 교통대책이 미비했다"며 "3기 신도시는 철도 위주의 대책인데 부동산 시장 악화로 건설비가 1.5~1.7배가량 늘어 사업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수도권 1·2·3기 신도시 위치 /자료=국토연구원·교통연구원 |
"서울 집값 잡기 위한 신도시? 장기 주택수요 우선"
정부는 1기 신도시의 광역교통 문제를 교훈삼아 1997년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2기 신도시 개발부터 '광역교통 개선대책'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광역교통시설의 공급지연이 반복되자 지난해 12월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교통대책 수립시기를 '지구지정 후 1년 이내'로 의무화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한 게 골자다.
입주가 진행됐거나 예정된 지구 중 개선대책 이행률 또는 집행률이 50% 미만이거나 철도사업이 1년 이상 지연된 곳에 대해서는 단기 특별·보완대책을 통해 입주민 교통편의 제고를 꾀했다. 특별대책지구로 지정된 화성 동탄2 등에 광역·전세버스, 시내·마을버스를 확충하는 식이다.
이달 19일엔 국토부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의 서울 5호선 연장 노선 조정안이 나오면서 김포와 검단신도시 주민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인천시와 김포시의 협의가 남은 만큼 현실화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인천시민연합은 "대광위 중재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관련기사: 5호선 연장노선, 진통 끝에 인천검단 '2개역' 경유(1월19일)
수도권 교통지옥은 언제쯤 해소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주거-교통-산업을 포괄한 장기적이고도 입체적인 도시계획 종합 입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도시계획과 교통계획을 수립한 뒤 신도시를 조성해야 하는데 그간 정부는 주택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주택가격이 오르면 급하게 신도시를 지정해 왔다"며 "계획 단계에서 10~20년 후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주택수요를 추정한 뒤 그에 맞춰 도시를 단계적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세워야만 '선교통 후입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신규 택지 지정도 서울 접근성만을 고려할 게 아니라 자족기능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 교수는 "(주민들이)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가정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갖춘 지역의 주택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형태의 직주균형 신도시를 계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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