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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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6일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지 7년, 1심 재판이 시작된 지 5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에게는 재판에 개입할 직무권한이 없기에 이들의 재판 개입은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법리가 주요하게 적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지난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 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비자금 조송 등 47개 범죄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직권남용죄에 대해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은 사건과 관련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이 명백하다”며 “(사법행정권자에게) 직권남용에서 말하는 일반적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에게 사무 핵심에 대해 일반적 권한을 인정할 수 없고, 연구 업무에 대해 일반적 권한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 개입 행위에 관해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이 존재하지 않고,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는 월권 행위에 관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지난 2022년 4월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판시했다.
이러한 법리를 기초로 ▲ 양 전 대법원장 등에 재판 개입할 직권이 없었거나, ▲ 직권에 속하는 지시였더라도 재판 개입 또는 부당 지시가 아니었거나, ▲ 직권에 속하는 지시였고 부당한 지시였으나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하지 않아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에게 청구를 기각하라는 의견을 전달해 판결을 번복하고 재판 절차를 지연시키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자로 재판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 양 전 대법원장에게 김 전 대법관에 대한 직무권한이 없다”며 “대법원장은 재판장의 지위에 있으나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재판부)에 대해 관여할 권한이 없으므로 소부에서 진행하던 재상고 사건(강제동원 손배 소송)에 대한 일반적 직무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남부지법이 헌법재판소에 유리하게 이용될 수 있는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을 결정하자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재판부에게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재결정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의견을 전달한 것은 재판 개입에 해당하고, 박병대 전 대법관도 이러한 재판 개입에 가담했다”며 “그러나 이 전 상임위원에게 재판에 개입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으므로 직권 행사나 직권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작성을 지시할 직무권한은 있지만 실제 지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물의야기 법관 보고서에 포함된 법관에게 부당한 인사 조치를 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양 전 대법원장에게 인사 조치할 직무 권한이 있고 실제 인사 조치를 했지만 직권남용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전보 인사 관련 인사권자에게 폭넓은 재량이 있고, 근무 희망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라며 “전보시킨 행위가 재량권을 일탈해 남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에 개입할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검찰이 판단한 다수의 보고서에 대해 재판부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에게 작성을 지시할 직무 권한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해당 보고서가 재판 개입과 관계없어 직권남용이 아니고, 직권남용이라고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 시도를 위한 각종 보고서 작성 지시에 대해서는 임종헌 전 차장이 직권을 남용해 법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맞지만, 양 전 대법관 등의 가담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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