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의결한 지난 30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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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정부는 특조위에 부여될 과도한 권한, 공정성과 중립성 확보의 어려움, 앞서 이뤄진 검·경 수사 등과의 중복,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조사기구의 권한이 지나치게 넓다’ ‘구성이 공정하지 못하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정부 측 주장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당시 정부·여당 인사들이 제기했던 것들이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막아섰던 논리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두고도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도한 권한 부여돼 헌법 정신에 어긋나”
정부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으로 구성되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법원의 영장 없이 동행명령,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등을 할 수 있어 지나치게 권한이 크다고 주장했다.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이태원) 특조위의 업무 범위와 권한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사법부와 행정부의 영역을 침해하고 있다”며 “참사의 책임소재 규명은 사법부의 역할이고 재난 전 과정의 적정성 조사는 행정부의 역할인데 특조위가 이를 포괄적으로 담당한다는 것은 과도하다”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때도 동일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특조위의 동행명령권을 문제 삼으며 법안에 반대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이 정한 특조위가 동행명령권을 갖게 되면 법관에 의한 영장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세월호 특별법 입법 논의 당시 정부·여당과 유가족은 특조위 수사권 부여를 두고 거세게 충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조위에 수사·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삼권 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반대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검사의 자격을 지닌 자에게 특별법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결국 세월호 특조위에 수사·기소권은 부여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공정성·중립성 논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7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 박 전 대통령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정부는 특조위 구성에 “공정성과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특조위의 위원 11명 중 3명은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해 추천하도록 하고, 4명은 여당, 4명은 야당이 추천하도록 규정한다. 국회의장 추천 3명이 사실상 유가족 단체 몫 인사로 채워져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정부 측 주장이다. 여당도 줄곧 조사기구 구성의 정파성을 문제 삼아 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전 정책위의장은 지난해 4월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적 아픔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재난 정치법’”이라고 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배후 세력이 있다” “정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논리를 펴면서 특조위 구성의 공정성·중립성을 문제 삼았다. 박 전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배후조종 세력들이 유족들에게 잘못된 논리를 입력시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했다.
“수사 끝난 사안”···진상규명 끝났다는 정부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이 “검경 수사와 국정조사, 헌재 탄핵심판 선고 등을 거치며 정상적으로 진행돼왔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이 책임을 물어 경질하거나 스스로 물러난 이가 0명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으로, 윤희근 경찰청장은 소환 조사 없이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로 처리됐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9일에야 재판에 넘겨졌고,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구청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정부와 여당은 수사기관의 수사 과정과 결과를 들어 특별검사와 특별법 도입을 반대했다. 심재철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참사 후 특검 도입 주장이 나오자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역할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진상규명 후 많은 관계자가 문책을 당했고 드러난 문제점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세월호 특별법과 특검 논의는 이런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고 했다.
“세금 도둑”, “국민 세금 들어가는 문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2014년 9월 2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로 이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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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태원 참사 특조위 운영에 ‘돈이 많이 든다’는 주장을 대놓고 내놨다. 전날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국회 예산처는 앞으로 2년간 특조위 인건비로만 96억원의 예산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일선 재난관리시스템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특조위 구성·운영의 발목을 잡은 것도 ‘세금도둑’론이었다. 2015년 1월16일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였던 김재원 전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세월호 특조위) 규모가 너무 크다”며 “조직을 구상하는 분이 ‘세금도둑’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이 발언 이후 설립을 한창 준비 중이던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 부처와 협의 자체가 올스톱됐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 후에도 예산 논란은 이어졌다. 2016년 4월 특조위 활동 연장을 두고 논의가 벌어진 시점에 박 전 대통령은 “6월에 마무리가 된다면 그동안 재정이 150억원 정도 들어간다, 인건비도 50억 정도 썼다고 알고 있다”며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들은 당시와 지금 정부 대처가 닮은 꼴이라고 했다.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도입 당시 박근혜 정부와 현재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너무 복사판이라 슬프다”며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것은 이전이나 지금이 똑같다”고 했다.
박상은 전 세월호 특별조사위 조사관은 “예산이나 위원 구성 등의 반대 논리 구조를 가져가는 것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박근혜 정부도 특조위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기회 자체를 박탈하려고 하니 더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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