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이대로도 괜찮은, 아픈 몸
잘 아플 수 있는 권리 ‘질병권’ 말하는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인터뷰
“내 몸은 사회 총체가 집약된 것”
돌봄 수용하고, 표준의 몸 다양화해야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가 지난달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백준서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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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국 사회를 규정할 때 ‘남성’ ‘비장애인’ ‘선주민(먼저 살던 사람)’ 중심 사회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덧붙여 ‘건강 중심’ 사회라고 말해요. 모든 사람이 건강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사회죠.”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47)는 지난달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픈 몸은 질병을 가진 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 중심 사회에서 배제된 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한 대표는 본인이 난치성 질환을 갖게 되면서 산업화·경제성장이 압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아픈 몸들을 위한 ‘언어’가 없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잘 아플 권리, 즉 ‘질병권’을 이야기하는 운동을 2019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이다.
조한 대표는 30대 중반까지 튼튼한 몸에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몸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팔레스타인에 3개월 체류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병원에서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증세가 갑상샘암과는 달랐다. 2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갑상샘암 외에 다른 난치질환도 몇 가지 안고 있음을 알게 됐다.
혼란스러웠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아픈 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증세와 질병을 관리·극복하는 방법 외에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싶었다. 책들을 읽어봤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질병 극복기 아니면 질병을 계기로 삶을 돌아보고 긍정하게 됐다는 자기성찰 서사가 대다수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기 시작했다.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에 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글로 정리했다. 그는 “처음 글을 쓸 때는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얘기하는 데 누가 관심을 가질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 매체 ‘일다’에 연재된 글은 큰 호응을 얻었다. 글은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고 워크숍·강좌 등으로 이어졌다. 자료 조사 등을 위해 인터뷰한 아픈 사람만 200명이 넘었다. 2019년부터는 ‘다른몸들’이라는 단체를 꾸려 질병권과 돌봄 문제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가 지난달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양다영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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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질병권이란 아픈 몸으로 사회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권리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해지는지가 아닌, 아픈 이들을 위해 개인이나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한 대표는 질병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이나 건강 상태를 개인이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몸은 선천적 요소와 신체 활동의 결과뿐 아니라 수많은 사회 환경적 요소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아픈 몸을 더 아프게 하는 사회 구조에 주목하고 모순된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는 “‘내 몸은 내 것이지만 사회 총체가 집약된 것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정규직보다 나쁘다거나, 성 소수자의 자살률이 전체 평균보다 높은 건 사회적 모순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했다.
건강에 관한 개인의 노력을 통째로 부정하는 건 아니다. 개인이 노력하면 노력하지 않을 때보다 건강할 가능성은 커진다. 다만 소득·자산 규모에 따라 삶의 질이나 의료서비스 접근성 등이 크게 차이나는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건 신화에 가깝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건강이나 질병을 개인이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사고하게 만든 건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면서 “지금은 깨진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처럼 누구나 노력을 한다고 건강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한 대표는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설명했다. 우선 돌봄을 수용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밥숟가락 들 수 있을 때까지만 살겠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밥을 먹여주는, 적극적 돌봄을 받는 몸이 되는 것에 대한 수치감이 깔려 있다. 그는 돌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문화적 풍토가 조성되려면 공적·사적 돌봄이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왜 아픔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보면 해답이 나온다고 했다. “비용 문제도 커요. 질병으로 시력을 잃는다거나 걷지 못하게 되는 기능적 손상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예요. 비용에 대한 두려움은 건강보험 보장률을 올려 무상 의료에 가까워지면 줄어들겠죠. 그리고 휠체어로 도로와 건물을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사회 구조적 차별과 낙인이 없다면 휠체어를 타는 두려움도 줄겠죠.”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몸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사회 제도나 각종 환경을 조성할 때 상정하는 ‘표준의 몸’도 바뀌어야 한다. 가령 표준 체형 외에도 여러 치수가 판매되는 기성복처럼 노동 생산성 중심으로 설정된 ‘20대 건강한 비장애인 남성’ 외의 몸도 ‘표준’의 영역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한 대표는 건강 중심 사회의 프레임을 변화시키려면 아픈 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질병이 있는 사람들이 병명과 상관없이 ‘아픈 몸’이라는 정체성에 기반해 자신들을 배제하는 건강 중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면서 “연대를 통해 아픈 몸들이 더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아픈 것 때문에 더 아프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통찰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연대가 없었다면 질병을 의제로 이렇게 오래 활동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프다는 얘기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잘 못 하는 성격이지만 동료들에게는 ‘아프고 힘들다’ ‘심각한 자괴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편하게 할 수 있어요. 내가 가장 ‘나다운 나’로 자기검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경청해주는 동료들이 있어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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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양다영 PD young@kyunghyang.com, 백준서 PD b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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