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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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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왕실화원의 8폭 잔치 그림…생기 되찾고 다시 독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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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1일 1년여간의 보존처리 작업을 마치고 취재진에 공개된 19세기초 제작본 ‘곽분양행락도’ 병풍의 실물.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 소장품으로 14일 독일로 돌아간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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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팔자가 기구하다. 원래는 조선 궁궐에서 혼사 등의 길례에 쓰이며 임금의 눈길을 받았을 잔치 그림이었다. 그러다 조선왕조가 쇠잔해진 120여년 전 일본과 독일의 상인들 손을 거쳐 독일 동부 지방도시 라이프치히의 박물관에 팔린 뒤 죽 현지에서 찾는이 없이 묻혀있었다. 현지 박물관 수장고 구석에서 빛바래진 채 잊혔던 조선 궁궐의 길례용 병풍그림이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와 제 모습을 찾게 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과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소장 박지선)는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관장 레온틴 마이어 반 멘쉬)이 1902년부터 소장해온 조선시대의 고급 의례용 장식 그림인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에 대한 1년 3개월간의 보존처리 작업을 마치고 11일 오전 서울 상도동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작업현장에서 복원한 그림 실물을 취재진에 공개했다.



‘곽분양행락도’는 7~8세기 중국 당나라 때 현종과 숙종 등 네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무신 출신의 재상이었던 분양왕 곽자의(郭子儀, 697-781)가 늙어 은퇴한 뒤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연회를 즐기는 정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19세기 초반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곽자의는 안사의 난을 진압하며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죽을 때까지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장수했고, 자손들도 번창해 후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후기 궁중은 물론 민간의 양반들과 서민들도 그의 부귀와 다복이 자신들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일종의 길상그림으로 ‘곽분양행락도’를 그리게 하거나 구입해 소장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19세기 중후반에 가장 널리 유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22년 역시 재단에서 위탁받아 수리복원한 시카고미술관 소장품을 비롯해 40점 넘는 조선 화가들의 ‘곽분양행락도’가 현재 국내외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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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장이 11일 오전 연구소에서 공개된 병풍 앞에 서서 복원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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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그림 왼쪽 상단에 청록빛으로 산과 계곡, 폭포를 묘사한 부분. 산세를 필선으로 그리지 않고 청록안료의 농도를 조절해 빚어낸 다채로운 색면의 층위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당대 최고수준의 실력을 지닌 궁중화원의 솜씨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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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의 ‘곽분양행락도’는 1902년 일본의 골동상에게 그림을 넘겨받은 독일의 미술품 상인 쟁어(H. Sänger)를 통해 박물관이 구입해 소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8폭으로 제작됐으며 1~3폭에는 집안 풍경과 여인들,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4~6폭에는 잔치 장면, 7~8폭에는 연못과 누각의 모습을 담았다. 전체 병풍의 높이 183.2㎝, 길이 408.8㎝의 대작으로 각 폭 그림들은 세로 132㎝, 가로 50㎝에 이른다.



풀과 꽃을 병풍 모양의 벽에 늘어뜨린 조선후기 지체 높은 양반 사족의 정원 풍경과 중국의 골동기물들이 조선왕실의궤에도 나오는 붉은 주칠을 한 탁자 위에 가득한 모습, 책들을 네모진 서가에 정연하게 놓은 책가도,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담은 백자도의 도상 등 중국의 ‘곽분양행락도’와 명백히 차별되는 조선 후기 특유의 장식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당대 최고 화격의 곽분양행락도란 평가를 받는다.



중견 회화사연구자인 박은순 덕성여대 명예교수는 “그림에 나온 청록안료를 써서 산과 바위의 명암을 농도의 층위로 나타내는 부분이나 나무, 기와 등에 보이는 명암 묘사는 당대 최고수준의 왕실 화원만이 구사할 수 있는 필법”이라며 “그림 자체가 도식화된 평면적 장식화가 아니라 상당 부분 사실적인 풍경 묘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곽분양행락도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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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분양행락도’의 핵심 부분인 곽자의 일가의 잔치 광경. 두 동자를 곁에 두고 마당에서 춤추는 무녀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곽자의와 그의 주위에 모인 일가 사람들의 다채로운 표정과 동작이 하나하나 묘사되어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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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소장기관 입수 당시에는 8폭 병풍의 형태였으나 나무틀이 뒤틀려 그림만 따로 떼어내는 과정에서 1면과 8면의 화면 일부가 잘렸다. 독일에서 그림 부분만 낱장으로 보관했다가 2022년 재단의 지원을 통해 한국의 정재보존연구소로 이송된 뒤 박지선 소장 등 작업팀이 노력으로 8폭 병풍으로 장황된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이 그림은 14일 다시 독일로 돌아간다. 독일의 박물관 쪽은 올해 중에 복원된 그림을 선보이는 특별공개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재단 쪽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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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열리는 전각 회랑에서 앵무새를 지켜보고 있는 일가 여인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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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중 정원 풍경. 조선후기 지체높은 양반 사족의 정원을 병풍모양으로 장식했던 꽃과 풀이 걸쳐진 담장의 모습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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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광경 뒤켠에 중국 골동기물과 이를 받치는 붉은 주칠 탁자의 모습들도 눈길을 끈다. 주칠 탁자는 조선왕실의궤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이 그림이 궁궐에서 의례화로 쓰였음을 드러내는 요소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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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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