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54] 섹스(sex)와 젠더(gender)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F 소설가 어설라 르 귄(Ursula Le Guin)의 ‘어둠의 왼손’에는 26일을 주기로 성(性)을 바꾸는 게센국의 거주민들이 등장하며, 윌리엄 텐(William Tenn)의 ‘금성과 7개의 성(性)’에서는 생존 때문에 7개의 성을 갖게 된 금성인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공상과학소설에서는 성이 유동적인 외계 세상을 묘사하는 일이 많다. 반면에 우리가 성을 적시해야 하는 서류에는 남성과 여성 두 성만 존재한다. 의학적으로는 여기에 남녀 어느 쪽으로도 분류가 안 되는 간성(間性·intersex)을 더하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성을 나타내는 단어가 섹스(sex)외에 젠더(gender)도 있다. 1950년대에 뉴질랜드의 심리학자 존 머니(John Money)는 생물학적 성과 반대되는 성을 가진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상담하다가 ‘심리적 성’이라는 뜻으로 젠더를 쓰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로다 웅거(Rhoda Unger) 같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섹스가 남녀의 성적 역할을 고정화하기 때문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이라는 뜻을 지닌 젠더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젠더라는 단어와 개념은 널리 사용되었다.

성적 소수자를 말할 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자기 스스로 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성 정체성은 ‘gender identity’의 번역이고, 누구에게 성적으로 끌리는가를 보는 성적 지향을 말할 때 성은 ‘sex’를 말한다.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의학적으로 지정된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다르게 인지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해야 바꾼 성 정체성이 인정되었지만, 지난 10년간 수술하지 않은 사람에게 트랜스젠더 성별이 인정된 판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독일에서는 전문가의 소견서 없이 자신의 결정만으로 (마치 이름을 바꾸듯이) 젠더를 바꿀 수 있는 법이 통과되었다. 젠더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트랜스젠더나 성 소수자에 대한 모든 편견을 없애지는 못해도, 이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사는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