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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종합병원 입원환자, 전공의 이탈 前 70~90%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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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갈등] PA 간호사가 빈자리 채우고 수술 미룰 수 없는 환자 몰려

지난 2월 전공의 1만여 명이 집단 이탈해 복귀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 들어 대형 병원의 평균 입원 환자 수는 파업 이전의 70~90%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정부가 최근 합법화한 ‘PA(진료 보조) 간호사’ 1만여 명이 이탈한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동시에 더는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위기 환자’가 몰려들기 시작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환자 단체들은 “최근 수술·입원 연기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민원이 상당히 줄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상급 종합병원 47곳의 지난달 초 평균 입원 환자 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전 대비 63% 수준이었다. 이후 이달 15~19일엔 파업 전의 70%까지 올라왔다. 병상 100개 이상인 종합병원(상급 종합병원 포함)의 입원 환자도 같은 기간 8만3549명에서 8만8279명으로 약 6% 늘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이전의 92% 수준이다. 의사 부족으로 수술·입원 환자를 30~50%씩 대폭 줄였던 대형 병원의 환자 수용 능력이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았는데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이른바 ‘빅5 병원’은 60% 안팎에 머물러 있다. 이 병원들의 전공의 비율은 절반가량으로 특히 높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대형 병원 입원 환자들이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PA 간호사 투입’을 꼽는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상급 종합병원을 포함해 전국 종합병원 387곳에서 PA 간호사 1만1388명이 일하고 있다. 수술 보조 등을 해온 PA 간호사는 그간 위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었다. 의료법상 환자 진료·처치 등은 원칙적으로 의사가 해야 한다. 간호사는 의사 지시를 받아 일부 보조 업무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형 병원에선 의사 부족으로 PA 간호사들이 동맥혈 채취, 혈액 검사, 심전도 검사 등 전공의들의 업무를 대신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에 정부는 전공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지난 2월 말 PA 간호사들이 전공의 복귀 때까지 일부 의사 업무(응급 약물 투여·채혈 등)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정부 관계자는 “긴급이 아닌 수술이나 입원을 담당하는 분야에서는 PA 간호사들이 꽤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상황이 다소 나아지면서 응급 환자나 그동안 수술을 미룬 중증 ‘위기 환자’도 느는 추세다. 병원들도 파업 초기 미뤘던 수술을 당기고 있다. 지난 2월 말 유방암 진단을 받은 A씨는 당초 다음 달 9일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18일 병원으로부터 “이달 24일로 수술을 당길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수술을 빨리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최근 대형 병원 전임의(세부 전공 중인 전문의)의 복귀 움직임도 뚜렷하다. 지난 2월 말 전공의가 집단 이탈했을 때 대형 병원 100곳의 전임의 2741명 중 병원에서 계속 근무하는 계약을 한 비율은 3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지난 19일 기준 전임의 계약률은 55.9%까지 올랐다. 초대형 병원인 ‘빅 5′의 계약률은 58.1%에 달했다. 전공의 이탈에 동조했던 전임의들도 파업이 길어지자 속속 복귀하는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공의들도 일부 복귀하고 있다고 한다. 대형 병원 관계자들은 “전공의 다수가 ‘법적 처벌을 받더라도 1년 쉬겠다’는 입장이지만, 더 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전공의들도 꽤 있다”고 했다. 각 대학이 내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하는 이달 30일이 지나면 의대 증원은 확정돼 되돌릴 수 없다. 정부 부담도 커지지만, 전공의·의대생도 얻는 것이 없게 된다. 의대 정원 확정 이후엔 개인 사정으로 못 쉬는 전공의들의 복귀가 늘어날 공산도 있다.

이런 현장 변화가 있는 가운데 여전히 ‘의대 증원 백지화’만을 요구하며 정부와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의료계 단체들에 대해 일부에선 ‘외통수’ 우려가 나온다. 빈손 상태에서 의료 파업이 더 길어지면 일부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가 시작될 수 있고, 의료계 ‘단일 대오’에도 금이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완전하지만 대형 병원은 일정 수준 가동이 되고, 파업 의사만 국민적 지탄을 받는 외로운 처지가 될 수도 있다”(세브란스병원 교수)는 뜻이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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