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서울엔 스위프트가 노래할 곳이 없다…대형 공연장 장기 공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지난해 7월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흠뻑쇼. 2026년 12월까지 이어지는 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 공사 이전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13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소셜미디어(SNS)에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일본 도쿄 콘서트 사진과 함께 “잘 섭외해서 ‘헬로 서울’이란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여기에 와서 헬로 도쿄라는 말을 듣는다”는 글을 올렸다. 스위프트를 국내에 초청하려 했지만 불발됐다는 의미였다. 정 부회장은 “각국 정부까지 관심을 보인 섭외 각축전에서 우리는 대형 공연장이 없어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스위프트는 지난 2월 실내 공연장인 도쿄돔에서 나흘 연속 네 차례 공연해 22만명을 불러모았다. 일본 영자지 ‘재팬타임스’ 등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스위프트 공연으로 도쿄에서 창출한 경제 효과는 약 341억엔(약 3024억원)에 이르렀다. 스위프트는 공연을 여는 도시마다 경제적 효과를 불러와 미국에선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다.







사라진 ‘꿈의 무대’





2022년 9월1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저녁 7시 해 질 녘, 지붕이 뚫린 경기장에서 본 서쪽 하늘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날 아이유 단독 콘서트 ‘더 골든아워: 오렌지 태양 아래’가 열렸다. 아이유는 이곳에서 콘서트를 연 첫 여자 솔로 가수였다. 이틀 동안 열린 콘서트엔 관객 8만5천명이 찾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지인 올림픽주경기장은 가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이곳에 무대를 설치하면 5만~7만명 안팎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조용필·서태지·이문세·싸이·방탄소년단도 단독 공연을 했다. 외국 팝스타 중에선 마이클 잭슨, 폴 매카트니, 콜드플레이, 레이디 가가 등이 공연했다.



올림픽주경기장이 지난해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가수들은 대형 공연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리모델링은 2026년 12월까지 진행된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6만6천석 규모로, 무대를 설치하면 4만5천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프로축구 시즌에는 경기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공연장이 설치되면 잔디 훼손 논란이 따른다.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를 망친 정부가 부랴부랴 이곳에서 케이팝 콘서트를 열었다가 축구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엔 공연장 부족 문제가 현실이 되자 서울시는 잔디 훼손 최소화를 조건으로 달아 공연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븐틴이 4월27~28일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고, 임영웅은 5월, 아이유도 9월 콘서트 계획을 공개했다.



2만5천명을 수용하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은 프로야구 시즌(4~10월)에는 대관이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만5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방이동 케이스포(KSPO)돔(옛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공연이 몰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동률, 샘 스미스, 찰리 푸스, 임영웅 등 국내외 가수들이 이곳에서 공연했다. 이들 공연장 모두 기본적으로는 체육 시설이기 때문에 체육 행사 우선으로 일정이 잡힌다. 관련 행사 일정을 채운 뒤 남은 날짜에 공연 대관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금리 인상, 건설 경기 악화에 공사 중단





한겨레

지난 2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모습.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민간 기업에서도 전용 공연장을 준비하고 있지만 공사 진행이 여의치 않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은 경기도 고양시에 실내 2만석, 야외 4만석 규모의 콘서트장을 만들겠다고 2015년 발표했다. 애초 올해 6월 준공이 목표였으나, 건설 경기가 나빠지고 각종 인허가가 지체되면서 6년이 지난 2021년 10월이 돼서야 착공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과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지난해 4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카카오도 서울 도봉구 창동역 근처에 2만8천명 규모의 콘서트장 건설을 추진했다. 시설 소유권은 서울시가 갖고, 카카오는 준공 뒤 30년 동안 운영과 유지 관리를 담당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카카오가 건립 예상 비용이 증가했다며 일정 연기를 요청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가 지난 1월16일 주최한 ‘2024 정책 세미나’(대중음악공연산업의 위기, 문제와 해결 방법은 없는가?)에서 이상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은 “케이팝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국내 공연 인프라는 미흡한 실정이다. 케이팝의 세계적인 위상에 맞지 않게 국내엔 대중음악 전용 대형 공연장이 없다”며 “다른 나라 아티스트들이 월드투어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이른바 ‘서울 패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제 시상식 등 대중음악 관련 행사를 국내에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당시 정의당 의원은 “2019년 방탄소년단이 공연 티켓 133만장을 넘게 팔면서 전세계 티켓파워 부문에서 5위에 올랐음에도 국내에 케이팝 전문 공연장이 단 한개도 없다”며 “상반기에 대관 예약이 다 끝났고, 심지어 장소 부족으로 대관 경쟁이 심해 웃돈을 받고 대관을 넘기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의원은 “공연업계가 원활한 대관 업무를 위해 프로스포츠 관계자, 공연 관계자, 시설 관계자, 문체부가 같이 협의체를 구성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진전이 없다”며 유인촌 문체부 장관에게 “협의체 구성과 더불어 추가 공연장 건립과 같은 장기 계획 수립을 서둘러 달라”고 주문했다. 유 장관은 “일단은 있는 시설을 빨리 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최근엔 아이돌 가수뿐만 아니라 아이유 같은 여성 솔로, 임영웅 같은 트로트 가수의 노래를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듣고 싶어 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공연장이 넉넉하지 않아 도미노처럼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고 부회장은 이어 “단기적인 해결 방안은 서울시의 공원이나 경기도의 체육시설을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체육 시설이 아닌 전용 공연 시설 건립을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