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크롬웰병원은 지난 3월 애플 ‘비전 프로’를 이용해 미세 척추 수술을 두 차례 진행했다. 엑스엑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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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AR)이나 혼합현실(MR) 기술은 등장 초기부터 의료 분야에서 주목받았다. 2차원(2D) 영상으로만 확인했던 장기 구조나 병변 형태를 입체(3D)로 확장해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덕분이었다.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가 등장하며 이런 기대는 더욱 부풀었지만, 제한된 시야와 화질 등으로 생명에 직결되는 중요한 시술엔 적용하기 어려웠다.
최근 애플 ‘비전 프로’나 메타의 ‘메타 퀘스트’처럼 현실을 고화질로 확장해주는 기기가 등장하며 의료 분야와 혼합현실의 접점도 보다 또렷해졌다. 첫 시험대는 수술대다.
브라질 자라구아병원의 정형외과 의사 브루노 고바토는 올해 4월, 회전근개 파열 환자를 대상으로 어깨 관절경 수술을 시행했다. 어깨 관절경 수술은 어깨 부위를 절개해 관절 내부에 카메라를 넣고 외과의사가 화면을 직접 보면서 시술한다. 브루노 고바토는 의료용 모니터 대신 애플 비전 프로를 쓰고 영화관 수준의 고해상도 화면을 띄워놓고 수술을 집도했다. 검사 결과와 3D 모델도 허공에 실시간으로 띄워놓고 확인할 수 있었다.
수술 직후 브루노 고바토는 헤드셋 카메라의 ‘다이내믹 레인지’ 기능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수술 부위를 밝은 조명이 비추면 명암 차이 때문에 화면이 환부를 고루 보여주기 어려운데, 비전 프로 카메라의 다이내믹 레인지 기능 덕분에 명암차를 극복하고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보며 집도할 수 있었다. 브루노 고바토는 2016년엔 홀로렌즈를 이용한 척추 관절 성형술 장비를 시연하기도 했다.
앞선 3월에는 영국 크롬웰병원이 비전 프로를 수술에 활용한 첫 병원으로 기록됐다. 크롬웰병원은 두 차례 진행된 미세 척추 수술에서 의사 대신 간호사가 비전 프로를 쓰고 수술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각종 데이터를 확인하고 설정했다. 가상 화면 덕분에 간호사는 멸균 지역에서 수술 장비를 설정하고 데이터를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를 오가거나 장비를 직접 건드리지 않아도 됐다. 수술에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인공지능 공간컴퓨팅 기업 엑스엑스가 제공했다.
수술을 집도한 외과의사 사이드 아프텝은 비전 프로와 전용 소프트웨어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기존 의료장비를 혼합현실 기기가 대체하면서 시술 효율성을 높여 수술 시간과 환자의 마취 시간, 의료진의 피로감을 모두 줄였다. 4월 초엔 미국 어드밴트헬스 수술센터가 엑스엑스 소프트웨어와 비전 프로를 이용해 견관절 교체 수술을 마쳤다.
1세대 수술 보조 의사인 홀로렌즈도 시나브로 자리잡고 있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수술·암학부 연구원인 필립 프랫은 2018년 홀로렌즈를 이용한 피부 이식 시술을 성마리아병원에 도입했다. 홀로렌즈의 이미지 매핑 기술은 기존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방식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혈관 위치를 찾아냈다. 국내에선 세브란스병원이 2022년 홀로렌즈를 이용한 대장암 로봇 수술을 시연했다.
혼합현실이 의료 도우미로 자리잡으려면 별도의 장비 없이도 가상의 환부를 띄워두고 수술을 진행하는 단계로 확장해야 한다. 관련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의료 기술업체 홀로케어는 외과 의사가 환자의 고유한 해부학적 특성에 맞게 수술할 수 있도록 장기를 3D 인터랙티브 홀로그램으로 제공한다. 이 3D 홀로그램은 오슬로대학병원을 비롯해 유럽 5개 병원에서 간 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3D 홀로그램은 MRI 스캔에 비해 장기 정렬에 필요한 시간을 74%나 단축시켜준다.
국내에선 2021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3D 홀로그램을 이용해 특수안경 없이도 수술 부위를 띄워놓고 시술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국내 벤처기업에 이전한 바 있다.
이희욱 미디어랩팀장 asada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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