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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진돗개만 입마개 타령…이경규 ‘존중냉장고’에 반려인들 화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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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방송인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 ‘존중냉장고’가 첫 화부터 진돗개 차별, 시민 무단 촬영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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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입마개를 ‘존중’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일상적인 산책을 하는 보호자와 개는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누가 존중을 하지 않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설채현 수의사)



방송인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한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이 진돗개 차별 조장, 시민 무단 촬영 논란에 휩싸였다. 이 프로그램은 펫티켓(반려동물 공공예절)을 잘 지키는 시민을 칭찬하는 취지였지만 여러 견종 가운데 유독 진돗개에게만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고 영상에 등장하는 보호자에게 촬영 사전 안내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는 ‘존중냉장고, 반려견 산책 시 존중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존중냉장고’는 1990년대 이경규씨가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던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 ‘양심 냉장고’를 모티프로 한 콘텐츠다. 출연진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지켜보고 ‘가장 존중을 잘하는 대상’을 선정해 초대형 냉장고와 100만원 상당의 식품 상품권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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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경규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예능 프로그램 ‘존중냉장고’가 첫 화부터 진돗개 차별, 시민 무단 촬영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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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존중냉장고’ 시리즈 첫 화로, 펫티켓을 잘 지키는 반려인을 찾겠다며 이른바 ‘존중 리스트’에 매너워터(반려견 소변을 씻어내는 물) 사용, 인식표와 입마개 착용 등을 올렸다.



영상에서 이씨는 동물보호법이 정한 입마개 의무 맹견 품종(도사견,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 로트와일러와 해당 견종들의 혼종)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입마개를 하는 것이 ‘존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진돗개는 (법적으로) 입마개를 안 해도 괜찮다”면서도 “다른 분들이 봤을 때 좀 위협적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입마개를 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 등 출연진은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을 산책하는 반려견과 보호자를 카메라로 지켜보며 보호자가 배설물 처리를 제대로 하는지, 개가 인식표나 입마개를 착용했는지 등을 관찰했다. 이들이 카메라로 지켜본 견종에는 시츄, 말티즈, 푸들 등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는 소형 견종뿐 아니라 진돗개, 보더콜리, 사모예드, 리트리버 등 중대형견들도 포함됐다.



그런데 유독 진돗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만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 문제였다. 이씨 등 출연진은 문제행동 없이 산책하는 진돗개를 보고 “입마개를 안 해서 아쉽다”, “진돗개, 이번에도 입마개가 없다”고 말했다. 제작진 역시 ‘진돗개 발견, 이번에도 입마개 없음’ 등의 내용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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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공개 이후 댓글창에는 ‘진돗개·중대형견 혐오’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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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공개된 직후부터 ‘진돗개·중대형견 혐오’라고 지적하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관찰 카메라에 찍혔다는 한 진돗개 보호자는 “학대받은 강아지를 보호소에서 입양해서 멀쩡하게 산책시키기까지 저의 노력은 깡그리 무시된 채, 그저 입마개 없이 남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무지한 견주로 박제됐다”고 항의했다. 다른 누리꾼도 “진돗개만 콕 집어서 입마개 안 했다고 한다. 진돗개보다 큰 사모예드나 다른 품종견은 귀엽다고 했으면서 진돗개에게 성깔 있어 보인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영상에 나온 또 다른 보호자는 무단 촬영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산책 중 촬영에 대한 고지를 받은 적이 없는 저로서는 너무 당황스럽다. 왜 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해서 올리냐”며 “심지어 영상의 내용과 목적까지 너무 편파적이라 제 강아지가 나온 것뿐 아니라 영상 자체로도 몹시 기분 나쁘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한 영상이니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도 해당 영상이 진돗개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설채현 놀로행동클리닉 원장(수의사, 트레이너)은 13일 한겨레에 “입마개는 법이 정한 맹견 견종과 공격 성향을 보이거나 개 물림 사고를 일으킨 개가 착용하는 것인데, 영상 속 진돗개들은 아무런 공격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며 “입마개 착용을 존중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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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진돗개 산책 퍼레이드’ 행사에서 한 진돗개가 산책을 시작하고 있다. 산책가자 진돗개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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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정 굿보이스쿨 대표(트레이너)도 “국외에서는 맹견이라 할지라도 보호소나 훈련소에서 일정 시간 동안 교육이나 테스트를 거치면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입마개는 개의 몸집이 아니라 공격 성향, 개 물림 사고 이력 등을 보고 착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보더콜리, 리트리버 등이 나오는 장면과 달리 진돗개 산책 장면에서만 입마개 착용을 지적하는 것은 차별적 시선이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 대표와 반려인들은 우리나라 토종견인 진돗개도 다른 반려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진돗개 산책 퍼레이드’ 등의 행사를 열며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견종은 개의 사회성 및 공격성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설 원장은 “일부 방송이나 미디어가 진돗개를 단정적인 성격으로 묘사하며 중대형견 품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르고 있지만 최근 사이언스지에 공개된 논문만 봐도 개의 품종이 개들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9%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해당 채널에는 견종 차별·무단 촬영 논란에 대한 제작진의 공식 입장은 올라오지 않았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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