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지위·돈 있어도 탈출... 中자산가, 日로 이주하는 4가지 이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유식의 온차이나]

일본에 장기 거주하는 중국인

1년새 6만명 늘어 80만명 돌파

“제로 코로나 방역, 권위주의에

자산가·중산층, 가족 단위로 이주”

엔저에 아파트 투자·교육 목적도

최유식의 온차이나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1059

조선일보

한 중국인 여성이 현지 중개인(오른쪽)과 함께 일본 도쿄 고토구의 한 고층 아파트 단지 내 매물을 보러 가고 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 부유층 자산가와 지식인층의 일본 이민 붐을 다룬 뉴스가 쏟아집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월3일 도쿄만을 내려다보는 고토구의 한 고층 아파트를 사들여 이주한 광둥성 선전 출신 40대 중소기업가의 사례를 자세히 다뤘어요. 산케이신문은 5월 11일 “일본 거주 외국인 4명 중 1명은 중국인”이라면서 “장기 거주 중국인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보도했습니다.

작년 말 현재 일본에 3개월 이상 장기 거주 중인 중국인 숫자는 82만2000명으로 2022년 말(76만2000명)보다 6만명이 증가했어요. 중국인 장기 체류자는 2019년 80만명을 넘었다가 이후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2022년부터 다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 장기 거주 중국인은 불법체류자가 다수였지만, 지금은 도쿄 시내 고급 아파트를 사들여 가족 단위로 들어오는 이가 많다고 합니다. 갈수록 강화되는 권위주의 체제, 환자 한 명만 나와도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하는 제로 코로나 방역 등에 지친 자산가와 중산층이 탈출구로 일본을 택하는 것으로 보여요.

◇엔저 이용 값싼 도쿄 아파트 구매

중국인 이민자들은 그동안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를 택해왔습니다. 억만장자로 불리는 부호들은 싱가포르가 1순위 목적지였죠. 홍콩 주민들은 주로 이민이 쉬운 영국으로 갑니다. 하지만 지난 2~3년 사이에는 일본으로 향하는 중국인도 크게 늘었다고 해요.

중국 자산가와 중산층이 일본으로 향하는 배경 중 하나는 기록적인 엔저입니다. 위안화보다 엔화의 가치 하락 속도가 빨라서 도쿄의 아파트 가격은 베이징, 상하이, 선전 같은 중국 대도시보다 훨씬 싸졌다고 해요.

도쿄만을 내려다보는 고토구 도요스 지역 고층 아파트는 ㎡당 가격이 120만엔(약 1050만원) 전후라고 합니다. 평당으로 따지면 3500만원가량이죠. 반면 베이징이나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대도시 아파트는 ㎡당 200만엔(약 1800만원) 정도입니다. 도쿄가 40% 정도 싼 셈이죠.

중국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입니다. 이 때문에 더 떨어지기 전에 중국 부동산을 처분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쿄, 오사카 등지의 아파트로 갈아타는 중국인 자산가들이 늘어난다고 해요. 일본은 주택 구매 관련 규제가 적고 임대하기도 쉬워서 아파트 여러 채를 사들여 임대하는 중국인도 적잖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관영 매체 기자 “제로 코로나에 절망”

일본 이민 붐을 단순히 투자 측면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도 있어요. 과거엔 일본에서 일했거나 유학한 경험이 있는 중국인이 임대 목적으로 일본 부동산을 사들였지만, 지금은 일본 거주 경험이 없는 중국인들이 일가족을 모두 데리고 와서 구입한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는 겁니다. 도쿄 컴퍼스캐피털의 사오이 회장은 싱가포르 연합조보 인터뷰에서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중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입주해 사는 비율이 높아졌다”면서 “단순히 투자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어요.

일본 이민 붐은 3년 전인 2021년부터 본격화됐는데,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인맥이 좋아도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릴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거죠.

작년 일본으로 이주한 한 중국 관영 매체 기자는 연초 미국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그동안 정부 정책을 선전하면서 풍요와 성공을 누려왔지만, 제로 코로나 정책을 보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다”면서 “직위와 돈, 인맥이 있어도 기본적인 여행의 자유와 생활 수요마저 충족할 수 없다는 점에 절망했다”고 했습니다.

2년 전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자녀를 데리고 일본으로 이주한 한 중국인 남성도 일본 주간 현대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아이 둘을 모두 국제학교에 보낼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제로 코로나 당시 아파트 단지 봉쇄로 온 가족이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이민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중국에 가진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를 팔아 일본으로 왔다”고 했어요.

조선일보

중국의 부유한 중산층과 지식인의 일본 이주가 늘고 있다고 보도한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올해 1월 보도. /NP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육 목적 이민도 급증

교육도 일본 이민의 한 요인입니다. 명문 공립 초등학교가 많은 도쿄 분쿄구는 작년 말 현재 중국인 인구가 6498명으로 지난 5년 사이 57.6% 증가했다고 해요.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세이시, 쇼와 등 이 지역 4개 초등학교를 칭하는 ‘3S1K’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을 이민지로 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가장 큰 장점은 중국에서 멀지 않아 비행기로 쉽게 왕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 내 기반을 유지하면서 거주지만 일본으로 옮길 수 있는 거죠. 또 깨끗한 거주 환경, 안전한 치안, 같은 한자 문화권인 점 등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중국인들이 밀려들면서 부동산 시장도 상승세라고 해요. 시장조사 회사 도쿄 간테이가 발표한 도쿄 도심 6구의 지난 2월 70㎡ 아파트 평균 희망 매도가격은 1억1380만엔(약 9억9000만원)으로 1월에 비해 2.2% 올랐어요. 13개월 연속으로 2002년 이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스키장이 많은 홋카이도 후라노도 리조트와 별장 수요가 크게 늘면서 작년 택지 가격이 27.9% 올랐어요. 일본 각 지역 중 지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선전에서 금속 무역회사를 운영한 중국인 도모 하야시가 도쿄 도요스의 한 고층 아파트 자택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그는 작년에 65만달러를 주고 이 아파트를 사들였으며, 올 3월엔 중국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도 합류했다고 한다. /도모 하야시, 월스트리트저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유식의 온차이나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1059

[최유식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