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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중동 정세를 '핵(核)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일방 폐기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 복원을 위해 필수적인 핵 사찰 실무 협의가 라이시 대통령 사후에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를 통해 라이시 대통령 사망 이후 핵 사찰 실무 협의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IAEA는 "2022년 6월 IAEA의 핵시설 감시 카메라를 제거한 이란은 장비 재설치 문제를 두고도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도 증가했다. IAEA에 따르면 이란 내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은 지난 11일 기준 142.1㎏이다. 이는 IAEA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밝힌 비축량보다 20.6㎏ 증가한 수치다. 60% 농축 우라늄은 통상 추가 농축 과정을 거치면 2주 안에 핵폭탄 제조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 합의에서는 202.8㎏의 저농축 우라늄(통상 2~4%)만 보유할 수 있었다.
이란의 전체 농축 우라늄 비축량은 6201.3㎏으로, 직전 보고서 대비 675.8㎏ 증가한 것으로 IAEA는 파악했다. 대외적으로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이란 정부가 실제로는 핵 개발에 매진한 셈이다. 가디언은 이란의 핵 정책은 궁극적으로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권한이라고 전했다. IAEA는 "다음달 대통령선거를 앞둔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저장량 증가는 중동 전체에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라이시 대통령과 함께 숨진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의 직무를 대행할 인물로 알리 바게리 카니 이란 외무부 정무 담당 차관이 선임됐다. CNN에 따르면 바게리 카니 장관 대행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에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이란 기득권 내 강경파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무기로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핵무기를 신속히 생산할 수 있는 세력의 지위를 활용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핵 합의의 주된 내용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 노력을 중단하는 대가로 대(對)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했다. 이란은 우라늄 농도를 60%까지 높이는 한편 비축량을 늘려왔다.
핵 합의를 되살리려면 이란 내 핵시설에 대한 IAEA의 투명한 사찰이 필수다. IAEA는 "비밀 핵 활동이 이뤄진다는 이란 내 두 장소를 두고 해당 장소에서 탐지된 우라늄 입자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등에 대해 답변을 요구했지만, 이란이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총장이 실무 협상을 위해 이달 초에 이란을 방문했지만 성과가 없는 상태다.
설상가상 서방 진영도 분열하고 있다. 미국이 IAEA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 비난 결의안을 추진하려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동맹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미국 정부는 비난 결의안을 채택하면 이란이 더욱 강경하게 나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럽 외교가에서는 이란의 행동을 묵과하면 IAEA 권위가 훼손된다고 보고 있다. 또 오는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긴장 고조를 피하고자 동맹국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유럽 외교관들은 의심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반면 미국 관리들은 유럽이 이란 은행 제재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등 압박 수위를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WSJ는 "유럽 국가와 미국이 맞서는 사이에 이란은 실질적으로 핵 보유국이 됐고 핵무기마저 갖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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