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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극우와 손잡으려다… 佛 ‘드골 정당’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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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시오티 대표 ‘RN’과 제휴 발표에, 정치국원들 제명으로 맞서

조선일보

12일 아니 주네바르(가운데) 프랑스 공화당 사무총장과 소속 의원들이 긴급 정치국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에리크 시오티 당대표 제명을 발표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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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통 보수 정당 공화당이 조기 총선을 앞두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극우 세력과 연대를 시도하다 당 대표가 제명되는 등 최악의 내분을 겪고 있다. 공화당은 12일 긴급 정치국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에리크 시오티 대표를 제명하기로 의결했다. 시오티가 전날 극우 정당 국민연합(RN)과의 제휴를 추진하겠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자 하루 만에 전격 축출한 것이다. 당내 주류 인사들은 시오티의 구상을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독단적 결정이자 중대한 해당(害黨)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고 프랑스 언론들은 전했다.

아니 주네바르 당 사무총장은 “시오티는 당헌과 노선을 위배했다”며 “공화당은 독자적인 후보를 낼 것”이라고 했다. 2022년 11월 당 대표에 취임한 시오티는 당내에서는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가 이날 자신의 징계가 논의될 회의를 막기 위해 직권으로 당사를 폐쇄하자 정치국원들은 인근 다른 장소에서 회의를 강행했고, 제명 결정 뒤 여분의 비상 열쇠로 당사로 진입하며 대표 퇴출을 공식화하는 등 막장극에 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시오티는 자신의 퇴출이 의결된 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제명 조치는) 불법적이고 무효하며, 명백한 당규 위반”이라며 “나는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우리 당의 대표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썼다. 이에 따라 한동안 내홍(內訌)이 계속될 전망이다.

조선일보

에리크 시오티


공화당은 2차 대전의 영웅으로 현대 프랑스 정치체제의 초석을 다진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노선을 따르던 정당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화국연합(1976년), 대중운동연합(2002년), 공화당(2015년) 등으로 당 이름을 바꿔왔지만 정파를 초월해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드골을 비롯해 조르주 퐁피두,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등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한 정통 우파 정당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하지만 현재 하원 의석수는 RN(88석)에도 못 미치는 62석에 불과할 정도로 당세가 쪼그라들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 간판 정치인들이 부패 스캔들로 몰락하고, 비전 제시 실패 등으로 민심의 외면을 받은 탓이다. 지난 9일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단 6석을 얻으면서 국내 득표율 5위(7.2%)에 그쳐 30석을 획득한 RN에 한참 못 미쳤다.

RN과의 연대를 반대하는 당내 목소리도 분출하고 있다. 2022년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는 “시오티는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출신 현직 장관 7명도 공동성명을 내고 “드골 장군의 후계자들이 세운 이 당의 모든 가치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했다. 오렐리앙 프라디 의원은 “이런 미친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시오티는 더 이상 당대표가 아니다”라며 “열심히 일하고 매일 민주주의를 믿기를 희망하는 프랑스 시민들이 이 황당무계한 광경을 보고 있다”고 개탄했다. 뱅상 장브헝 당 대변인도 시오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던졌다.

지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반응도 공화당과 RN의 연대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라 트리뷴’에 따르면, 지난 11~12일 이틀간 시행된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인의 58%, 공화당 지지자의 56%가 “(RN과의 연합을 추진하는) 시오티의 결정이 틀렸다”고 응답했다. 파리 시민 레오 레비(25)씨는 본지에 “충격적이고 부끄럽다”며 “(공화당이 RN과 연합하면서) 이제 우리는 인종차별적인 극우와 사회주의·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극좌라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비난 여론 속에서도 시오티가 뜻을 굽히지 않고 RN과 연합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향후 프랑스 정치 지형은 더욱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RN이 최대 265석을 획득해 원내 1당에 오를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공화당과 손을 잡을 경우 과반(289석)을 넘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르몽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히려 좌파 세력이 통합을 위한 강력한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고 했다.

☞프랑스 공화당(Les Républicains)

약칭은 LR.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정치에서 좌파 사회당과 대통령을 번갈아 배출하며 정국을 주도했던 우파 정당. 샤를 드골이 1947년 조직한 프랑스국민연합(RPF)을 시작으로 신공화국연합(UNR)·공화국민주연합(UDR) 등 드골의 정치 노선을 추구한 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명맥은 드골 노선 계승을 표방하며 자크 시라크가 창당한 공화국연합(RPR)으로 이어졌고, 2002년 대중운동연합(UMP), 2015년에 공화당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른다. 21세기 들어 세력을 키운 극우, 중도 우파 정당에 밀려 급속히 쇠퇴했다.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년 재임) 이후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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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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