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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시위와 파업

[이진영 칼럼]비윤리적 의사 파업, 정부는 책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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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정책 바로잡자”는 의사 파업

‘오늘의 환자’ 위협하면 정당성 없어

의사 파업의 책임은 의사와 정부의 몫

‘미래 환자’ 위해 국회 중재에 나서야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


의사의 신뢰도는 높다. 지난해 말 ‘가장 신뢰하는 직업’ 여론조사에서는 1위가 과학자, 2위가 의사였다. 신뢰도 꼴찌인 정치인은 물론이고 판사, 공무원, 성직자보다 순위가 높다. 그런데 파업하는 순간 제 밥그릇 위해 환자 신뢰 저버린 파렴치한으로 전락한다. 파업의 목적이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라 잘못된 의료 정책 바로잡기라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더 높은 윤리 의식을 기대하는 것이다.

한국은 파업하는 의사를 형법 의료법 공정거래법으로 처벌하지만 대부분 나라에선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한다. 지난 100년간 70개국에서 300건 넘는 의사 파업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전공의들이 지난해 3월부터 10차례 41일간 급여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세계의사회는 세계 곳곳에서 의사 파업이 빈발하자 2012년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허용하는 성명을 내고, 파업의 명분이 의사들의 열악한 근로 여건 개선이든 왜곡된 정책 철회든 환자 안전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 파업이 일반 노동자 파업과 같을 수는 없다. 세계의사회는 의사들이 피고용인으로서 단체행동을 할 순 있지만 전문가로서 윤리적 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세계의사회가 제시한 단체행동 수칙의 핵심은 파업에 앞서 집회, 홍보, 협상, 중재의 노력을 최대한 기울일 것, 파업 기간 내내 필수 응급 의료를 지속할 것 두 가지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지금의 의사 파업은 불법 여부를 떠나 윤리적이라 보기 어렵다. 평소 의료 개혁에 무심했고, 의대 증원 협의엔 소극적이었으며,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발표하자 그제서야 움직였으나 정부와 대화는커녕 의사들 내부 이견 조율에도 실패해 대안을 못 내고 갈팡질팡했다. “그동안 휴진 빼고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 의사들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파업해도 중증·희귀병·응급 환자 진료는 열어둬야 하는데 말기 암 환자 항암치료를 안 해주고 열이 끓는 아이 안고 가도 받아주지 않더란다. 미래의 국민 건강을 위한 파업이라지만 오늘의 환자 희생이 수단이 돼선 안 되는 것이 의료 윤리다.

그렇다고 의사 파업이 의사들 욕하고 끝낼 일은 아니다. 의사 파업이 비윤리적이라고 반대하는 학자들도 그 책임은 정부가 함께 져야 한다고 본다.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정부 역할이 커지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요구하는 전통적 의사-환자 관계가 의사-정부-환자의 삼각관계로 확장됐으니 환자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만 요구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정부가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어 정부 권한이 막강하다. 그만큼 망가진 의료 체계에 대한 정부 책임도 크다. 소아과 오픈런이나 응급실 뺑뺑이는 정부가 환자를 볼수록 손해 보는 구조를 방치한 결과다. 의사들은 미용 의료, 환자들은 빅5 병원으로 쏠리면서 필수 의료, 지방 의료 다 죽는다는 소리가 커지자 근본적 수술 대신 의대 증원이라는 대증 요법으로 막아보려다 이 사달이 났다. 의사들 입장에선 의사 수 늘어나 밥그릇 작아지는 것도 싫겠지만 의료비 급증과 의료 질 하락이 불 보듯 뻔하니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의정 간 협의도 기본적인 근거 자료도 없이 대폭 증원을 강행했다. 정부는 의사들이 환자를 볼모로 잡고 있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정부가 환자를 볼모로 증원을 밀어붙였다고 본다.

단국대 의대 정유석 교수는 ‘일반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오너는 손해 보고, 경쟁 기업은 득 보고, 소비자들은 별 영향 없이 끝나는데 의사들이 파업하면 오너인 정부는 손해 보는 일 없고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했다. 2000년 의약분업 파업도 환자들이 병원과 약국 두 곳을 모두 도느라 돈 쓰고 불편을 겪는 것으로 끝났다. 당시 의사들 달래려 의대 정원을 줄였는데 그 피해를 지금의 의대 증원 분란으로 겪고 있다.

생업에 바쁘고 전문 의료 정책이 어려운 국민을 대신해 의정 갈등을 중재하며 국민의 이익을 지켜내야 할 책임은 국회에 있다. 이번 국회엔 의사 출신 의원이 8명이나 되는데도 골치 아픈 의정 간 다툼에 끼어들려 하지 않는다. 당장 내년에 의사 3000명 배출이 안 되고, 3000명이 배우던 의대 교실에 유급생까지 7000명이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의사든 정부든 국회든 미래 환자가 입을 피해를 외면하는 건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일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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