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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탄생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얀 스테인이 그린 ‘탄생 축하(1664년·사진)’는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이와 엄마에 초점을 두기 마련인데, 스테인은 아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다. 왜일까?
스테인은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의 거장으로 일상생활을 묘사한 장르화로 유명하다. 언뜻 보기에 ‘탄생 축하’는 갓난아기를 자랑스럽게 안은 아버지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장면으로 보인다. 그의 아내는 아직 몸을 회복하지 못한 터라, 화면 왼쪽 뒤 침대에 누워 죽을 받아먹고 있다. 아이를 낳은 방에 남편 외의 남자가 들어오는 건 금기시됐기에 집 안에는 여성들로 가득하다. 아마도 가족과 친척, 조산사일 것이다. 오른쪽 여자들은 음식을 만들고 있고, 침대 끝에 앉은 여자는 과음으로 취한 듯하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이 아빠는 축하와 환호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여자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니 왠지 조롱당하고 있는 것 같다. 화면 오른쪽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말라비틀어진 소시지를 들고 화면 밖 관객을 바라본다. 이는 발기부전을 암시한다. 바닥에는 깨진 달걀 껍질이 흩어져 있는데, 당시 ‘달걀 깨기’는 성관계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압권은 아이 뒤를 지나 방을 빠져나가는 젊은 남자다. 남편을 제외한 유일한 남자인 그는 두 손가락을 아이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의 얼굴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아이 친부에 관한 진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여자의 남편만 모르는 듯하다.
누구의 자식이든 어떠랴. 모든 탄생은 축복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스테인은 여러 상징과 암시를 통해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를 넌지시 알려준다. 결혼과 가족, 부부간의 신뢰와 정절, 축하의 의미, 진실과 거짓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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