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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가장 젊은 대륙 'Z세대'의 힘? 케냐 증세 하루 만에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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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만 23명' 시위 확대에 윌리엄 루토 대통령 결단…
과도한 부채·재정 부담은 그대로, 정부 비용감축하기로

머니투데이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나이로비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고 있다. 루토 대통령은 이날 논란을 일으킨 증세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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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루토 케냐 대통령이 하루 사이 23명이 시위 도중 사망하며 민심이 악화하자 세금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서명하지 않고 다른 긴축 방안을 찾기로 한 것. Z세대(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출생한 젊은층)의 극렬 시위에 하루 만에 재정 정책이 뒤집혔지만 케냐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하루 만에 뒤집어진 증세안… 무력 진압에 피로 얼룩진 시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루토 대통령은 세금 인상 법안에 반대하며 벌어진 극렬한 시위의 여파로 케냐 경제안정을 위해 추진한 세금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 전날 밤 시위대를 향해 '위험한 범죄자', '반역적'이라고 했던 대통령이 하룻밤 사이 입장을 바꾼 것. 루토 대통령은 "재정 법안을 원하지 않는다고 크게 외치는 케냐 국민의 소리를 경청해, 제가 양보하겠다. 2024년 재정 법안에 서명하지 않고 철회시킨다"고 밝혔다.

케냐 정부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고 도로, 지방 전기 등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며 한 달 전 세금인상 법안을 내놨다. 그러나 가뜩이나 치솟은 생활 물가를 더 뛰게 한다는 반발에 극심한 반대에 부닥쳤다. 루토 대통령과 정부 고위직의 화려한 생활이 도마 위에 오르고 관련 비용부터 줄여야 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전날 케냐 의회로 행진한 시위대는 경찰 진압 도중 23명 사망했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 일부는 세금인상 법안 통과에 반발해 의회 건물에 침입해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번 시위는 젋은층이 X(옛 트위터),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만큼 딱히 주도자가 없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케냐법사회의 케이스 오디히암보 회장은 세금인상 반대에 목소리를 높인 50여명이 납치됐다고 NYT에 밝혔다. 루토 대통령은 이에 "사라진 청년들은 현재 경찰에 구금 중이고, 상당수는 이미 풀려났다"고 말했다.

세금 인상 철회 카드로 시위 확산은 막았으나 정치 분석가들은 루토 대통령이 여전히 수세적 입장에 놓여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짚었다. 루토 정부는 추후 2주 동안 세금인상 대신 정부 지출을 줄이는 등 새로운 재정계획을 짜내는데 젊은층을 포함해 다양한 그룹의 참여를 독려하겠단 방침이다.


더 비싼 빚으로 기존 빚 갚는 악순환, 젊은 대륙의 비애

케냐 역사에 남을 이번 시위의 발단은 표면적으로는 세금 인상이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케냐 정부가 짊어지고 있는 수십억달러의 국가 부채에 있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지만 케냐 정부는 디폴트를 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국내총생산의 약 4분의 3에 달하는 채무(800억달러)로 세입의 27%를 이자 내는 데 쓰고 있다.

세금 인상은 철회했지만 그만큼 케냐 경제가 나아질 확률은 오히려 더 낮아졌다. 루토 대통령은 불과 2주 전 국제통화기금(IMF)과 재정안정을 위한 패키지에 합의한 바 있다. 광범위한 개혁과 증세 조치가 여기에 포함돼있다. 케냐는 IMF에 36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이 같은 재무부담이 케냐만의 일도 아니다.

케냐는 2000년대 초 도로, 철도, 전기, 댐 등의 기반시설 확충 자금을 빌려썼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가 직격타를 맞았다. 백신 구입비, 의료케어, 각종 코로나 지원 조치로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여기에 선진국이 금리를 높이면서 화폐 가치가 떨어지며 케냐 정부의 빚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여기에 최근 케냐 홍수는 빚으로 만든 기반시설과 농지를 파괴하고 수천명을 이재민으로 전락시켰다. 디폴트를 피하려면 또 다른 빚을 내 기존 빚을 갚는 수밖엔 없다. 비단 케냐만의 문제도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 절반이 의료나 교육에 쓰는 예산보다 이자를 대는데 쓰는 예산이 더 크다. 그동안 아프리카에 원조를 늘렸던 중국은 지갑을 닫고 있다. 지난 2월 케냐는 이달 만기인 유로화 채권 20억 달러를 상환할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10% 이상의 이자를 지불했다.

전 아프리카 주재 미국 외교관이자 조지워싱턴대학교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강사인 데이비드 신은 NYT에 "갚는 이율보다 더 높은 이율로 돈을 빌리면 더 깊은 구멍을 파는 것"이라며 "세수 공백을 메우느냐가 무거운 숙제"이라고 말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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