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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기후-생태 위기에 대한 비판과 전망
이송희일 지음 l 삼인 l 2만8000원
영화감독 이송희일은 최근 몇 년 새 에스엔에스에 기후와 생태, 자본주의에 관한 글을 활발히 올려 왔다. 지난 3년 동안은 전국을 돌며 기후위기에 관한 강연을 펼쳤다. 강연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 있었다. ‘왜 영화감독이 기후 강의를 하고 다니세요?’ 그의 첫 단독 저서인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기후위기는 단연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고 그에 관해서는 숱한 진단과 처방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문외한’인 이송 감독이 그 문제를 다룬 500쪽 남짓한 책을 내기로 한 까닭은 문제를 정확하게 보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보기에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들의 상당수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연원은 서구 제국의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에 있고 위기에서 벗어날 방도 역시 탈자본주의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자연의 재앙이 아니라 “가부장제 재앙이고 인종주의 재앙이며 자본주의 재앙이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재앙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 체제 전환이라는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발과 성장에 목매다는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 탄소 포집과 같은 불확실한 기술적 해결책이 아닌, 체제 전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인간 삶의 불평등을 심화하고 자연을 먹어치우는 파괴적인 시스템에 저항하는 생태사회주의가 필요하다.”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켜서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인류세 개념에 그는 비판적이다. 뭉뚱그려서 인류 또는 인간이라 칭하는 방식으로는 책임을 정확히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7개 나라는 전체 탄소 배출량 중 48.3%를 배출해왔는데, 소말리아는 0.00027%, 방글라데시는 0.015%, 온두라스는 0.012%를 배출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서구 강대국 국민들이 아니라 남반구의 민중들이다. 탄소발자국 개념을 처음 제시한 영국의 석유 기업 BP를 비롯해 전 세계의 100대 대기업이 탄소 배출량의 71%를 뿜어내는 상황에서 분리배출을 하라, 텀블러를 써라,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라, 채식을 해라…처럼 ‘개인’을 조준하는 명령어들은 사태를 호도할 뿐이다.
‘가난한 국가의 인구가 많아져서 생태계 파괴가 발생하고 생물다양성이 손실되고 있다’는 식의 인구론적 진단은 어떤가. 저명한 생물학자 제인 구달이나 영국의 환경 다큐 전문 방송인 데이비드 애튼버러도 이런 주장을 펼치곤 하는데, 이송 감독은 이 역시 신랄하게 비판한다. 12억 인구를 지닌 아프리카 전체의 누적 탄소 배출량이 3% 미만인 반면 영국 한 나라가 5%를 차지하고 있는데, “정말 인구가 문제인 걸까?” 게다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의 기근과 식량 불안의 뿌리에는 “15세기 영국을 필두로 한 식민지 체제”가 있다. 단적으로 지난 4세기 동안 최소 6천만 명의 인도인이 굶주려 죽게 된 배경에는 전통적인 자급용 농업을 무너뜨리고 수출용 단일 작물 재배를 강요한 영국의 제국주의 지배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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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위기의 책임과 비용을 남반구의 토착민에게 떠넘기는 대표적인 방식으로 이송 감독은 ‘개발도상국의 삼림 벌채로 인한 배출량 줄이기’(REDD+) 프로젝트를 든다. 북반구의 기업들이 남반구 재조림과 삼림 보전에 투자하고 그 대신 탄소배출권을 획득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그러나 “삼림 보호를 채굴권과 벌목권과 거래하는 속임수의 만찬”으로 변질되었다. 2020년 한국 산림청이 캄보디아에서 이 사업을 벌여 65만 톤을 감축하는 성과를 냈다고 발표했는데 현지 조사 결과 오히려 해당 삼림의 37%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한겨레 2021년 8월23일 치).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전기차가 거론되지만, 전기차 배터리의 원료인 리튬을 추출하는 공정에는 엄청난 물이 들어간다. 리튬 생산지인 칠레 아타카마 사막 인근 주민들은 리튬 추출이 야기한 물 부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리튬 말고도 코발트, 니켈, 구리, 망간, 금, 은, 흑연 등으로 구성되는데, 니켈 강대국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니켈을 침출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고자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고 있는 중이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전기차를 생산하는데, 전기차 배터리를 위해 석탄발전소를 가동하는 기막힌 모순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기차와 함께 생태 친화적 대안으로 촉망받는 바이오연료 역시 알고 보면 대규모 삼림 벌채와 식량 위기의 주범이다. 팜유 1톤을 생산하는 데에는 석유보다 열 배 많은 33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SUV 자동차 에탄올 한 번 채우는 데 필요한 곡물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지은이는 이렇듯 기후위기를 둘러싼 오해와 위선을 바로잡은 뒤 ‘제국적 생활양식’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다른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2023년 8월 두 차례 국민투표를 거쳐 야수니 자연보호구역과 초코안디노 숲에서 석유와 광물 추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에콰도르,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덮쳐 전기와 물 등의 인프라가 끊겼을 때 태양광 발전으로 도시의 등대 구실을 한 푸에르토리코 아드훈타스의 ‘민중의 집’, 1970년대에 주민들과 손잡고 덤불 숲 보호 투쟁에 나선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건설노동자연맹,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운동과 인도의 제로예산 자연농법 운동, 쿠바의 텃밭 가꾸기 등은 소비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와 다른 쾌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가능성을 꿈꾸며 저항의 춤을 추자는 것이 지은이의 명랑한 제안이다. 춤은 “그것 자체가 생명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퇴각할 다른 행성이 없고, “그렇기에 반격이 가능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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