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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英 보수당 참패 유력... 유럽 ‘정권 교체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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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일 스코틀랜드를 찾은 키어 스타머(오른쪽에서 둘째) 영국 노동당 대표가 선거 유세 도중 아나스 사르와르(휴대전화 든 사람) 스코틀랜드 지역 대표 등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4일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예상대로 승리할 경우 그는 차기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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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리시 수낙의 승부수는 결국 참패로 끝나게 됐다.”

영국 전역 650여 선거구에서 4일 치러진 조기 총선 전날 영국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내놓은 평가다. 리시 수낙 총리는 지난 5월 22일 전격적으로 하원을 해산하고 7월 4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올해 말쯤으로 예상됐던 일정을 4개월가량 앞당긴 승부수였다. 지난해 하반기 내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침체에 빠졌던 영국 경제가 올해 1분기 반등하자, 경제지표가 다시 악화하기 전에 총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단 판단이었다고 영국 매체들은 분석했다.

하지만 집권 보수당에 대한 민심은 이미 식을 대로 식은 상황이었다. 3일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보수당 지지율은 노동당(40%)의 절반 수준인 20% 내외였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는 노동당이 총 650석의 최소 과반(326석)을 가뿐히 넘어 3분의 2에 육박하는 431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보수당은 현재 의석(344석)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1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의석수 기준으로 1834년 창당 이래 최악의 총선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유권자들은 이날 14년 만의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에서 투표에 나섰다. 영국 남부 윈체스터의 투표소를 찾은 데이비스(45)씨는 본지 통화에서 “이번 선거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시작, 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보수 세력의 총체적 무능에 대한 심판”이라고 했다. 또 중부 맨체스터의 유권자 그레이엄(39)씨는 “런던행 고속열차 계획을 취소한 수낙 총리의 후안무치한 행태에 지역 유권자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며 “보수당 지도층의 거짓말과 도덕 불감증, 당내 분열을 보면서 정부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강경 세력에 떠밀려 브렉시트에 나선 보수당은 경제 주권 강화를 통해 영국이 새로 도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EU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자 해외투자가 썰물처럼 빠졌다. EU와 교역 급감으로 기업들은 타격을 받았으며, 동유럽 노동자들의 집단 귀국으로 심각한 노동력 부족마저 나타났다. 코로나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경제는 고물가·저성장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아프리카·중동 난민 급증으로 이민 문제는 더 악화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각종 거짓말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켰고, 뒤를 이은 리즈 트러스 총리는 재정 대책 없이 설익은 감세 정책을 내놨다가 영국을 금융 위기로 몰아넣었다.

경제난으로 텅 빈 곳간을 물려받은 수낙 총리는 국민보건서비스(NHS) 개혁, 고속철도 프로젝트, 교육 시스템 개혁 등의 사업을 잇따라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영국행 난민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은 인권침해 논란에 계속 제동이 걸렸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환경에 공통적으로 처한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경제난과 이민 문제라는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중도 정부가 잇따라 몰락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분석했다.

영국 노동당은 “모든 것이 ‘보수당의 무능’ 탓”이라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보수당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실정을 거듭하자 다수의 중도 유권자가 노동당으로 돌아섰다. 지지율 상승에 고무된 노동당은 “보수당이 못하는 것을 우리가 해 보이겠다”며 공공 주택과 교통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저임금 인상, 인력 증원을 통한 의료 등 공공 서비스 개선, 무상교육 확대, 복지 수당 인상 등의 야심 찬 계획도 쏟아냈다.

보수적 유권자들은 이러한 정책 기조에 불안감을 드러낸다. 노동당의 공약 대부분은 막대한 국가 예산이 소요되는 것들이다. 대폭 증세를 하지 않는 이상, 재정에 더 큰 부담을 주면서 영국 경제를 나락으로 몰고 갈 것이란 걱정이 크다. 지난해 말 영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5%에 해당하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냈다. 이로 인해 국가 부채 역시 1년 GDP와 맞먹는 2조5000억파운드에 달한다. 보수당도 이 점을 파고들고 있다. 수낙 총리는 “지금 노동당을 선택하면 그동안의 모든 진전이 원점으로 돌아가며 불확실성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총리 등극이 확실시되는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수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는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영국 검찰의 2인자격인 왕립검찰청장을 지내고, 2015년 정계에 입문해 5년 만인 2020년 노동당 대표가 됐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나 ‘제3의 길’로 유명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부족하다는 것이 중평이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스타성의 부족에도 법조인다운 진지함과 실용성을 무기로 노동당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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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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