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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6 (월)

‘36주 임신중지 브이로그’ 수사…낙태죄 폐지 후 입법 공백이 부른 소동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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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임신중지 수술 이후 회복 경험담 유튜브에 공개

“선정적” “살인 아니냐” 논란에…경찰, 집도의 등 수사 착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후 제도 미비…“국회·정부 책임 커”

임신 36주째에 임신중지 수술을 했다는 경험담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논란을 빚자 정부와 수사당국이 대응에 나섰다. 영상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살인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검증에 나선 것이다. 여성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2019년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후속 입법 미비로 초래된 법적 공백 상태를 해소하는 등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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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을 통해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는 여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현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공공 플랫폼을 통해서는 임신중지와 관련한 ‘실질적인’ 정보를 얻기 어렵다. 김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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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른바 ‘36주 태아 낙태 브이로그’ 유튜브 영상을 올린 신원미상의 유튜버와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15일 출입기자단 정례 회견에서 “일반적인 낙태 사건과 다르게, 무게 있게 수사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플랫]먹는 임신중단약 ‘미프진’, 국내 도입 무산됐다

지난달 27일 유튜브에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36주 태아 낙태 브이로그’라는 제목으로 퍼져나갔다. 영상에는 익명의 20대 여성이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인해 임신 사실을 몰랐다” “병원 3곳 찾아갔지만 다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무심한 내 태도가 만든 결과에 죽어버리고 싶었다”면서 임신중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모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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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 온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 해당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36주 태아 낙태 브이로그’라는 제목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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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은 크게 세 갈래다. 먼저 “36주면 살인”이라는 반응이다. 두번째는 “이런 일까지 유튜브로 만들다니 충격적”이라면서 소재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의견이다. 영상 내용에서 석연찮은 부분을 지적하며 ‘조작’을 의심하는 견해도 있다. 급기야 복지부가 지난 12일 보건복지부는 살인죄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나섰다. 복지부나 경찰은 영상 속 주인공이나 의사의 신원을 특정하지는 못한 상태다.

여성계에선 이번 사건이 낙태죄 폐지 이후 계속되는 제도 공백이라는 구조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영상의 사실 여부, 산모·의사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5년이 지나도록 후속 입법에 손을 놓고 있는 정부와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2019년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모든 낙태를 금지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죄 처벌이 금지됐다. 반면 모자보건법이 허용한 임신중지의 경우에도 임신 24주차를 넘기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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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숙 국회입법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정부와 국회가 저출산 논의에만 집중하면서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고 방치했다”며 “아이를 낳을 여건이 되지 않거나 원치 않는 경우, 임신 초기에 중지를 선택할 수 있게 제반 시스템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임신중지가 가능한 주 수에 대해 태아·여성의 건강권을 고려해 전문가들과 세밀히 논의하고, 약물·외과적 시술 등 임신중지 방식을 포함한 입법안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조화롭게 공존할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고은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기본적으로 형사처벌은 최후의 수단으로 보충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고, 태아의 생명권과 자기 결정권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입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셰어’ 대표는 “의료체계가 임신중지 가능 여부 판단만 할 게 아니라 여성이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상담·지원을 연계하는 역할까지 포함해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며 “처벌에만 집중하면 보건의료적으로는 더 후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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