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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비즈톡톡] ‘반도체 거인’ 인텔 CEO의 이례적 자기비판… “AI 뒤처져, 56년 역사 최대 변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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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6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행사에서 패트릭 겔싱어 인텔 CEO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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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인공지능(AI) 같은 강력한 트렌드의 혜택을 아직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우리의 비용은 너무 높고, 마진은 너무 낮다. 회사의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인텔 수장인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일(현지시각) 직원들에게 보낸 통렬한 자기비판의 메시지입니다.

◇ 대규모 적자에 구조조정까지… 코너에 몰린 인텔

지난 수십년간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선도해 온 인텔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전 세계 직원 11만여명 중 15% 이상을 감축하고, 올 4분기부터는 주주 배당도 중단한다는 고육지책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22년간 배당금을 지급해 온 인텔은 이날 “현금 흐름이 높은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개선될 때까지 주주 배당금 지급을 멈춘다”고 발표했습니다. 인텔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데이비드 진스너는 “매출도, 재정 상태도 우리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다”면서 “사업 모델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비용 감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AI에 특화된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인텔의 시장 지배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올 2분기 인텔은 적자 16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냈습니다. 매출은 작년보다 1% 감소한 128억달러(약 17조500억원)로,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특히 인텔의 캐시카우였던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은 작년보다 3% 줄어든 30억달러(약 4조원)에 그쳤습니다. 진스너 CFO는 실적 부진 원인으로 비핵심 사업에서의 과도한 비용과 AI PC 제품의 성급한 확대, 저조한 파운드리 가동률의 영향을 꼽았습니다. 인텔은 올 3분기에 매출 125억~135억달러, 순손실 주당 0.03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 역시 시장 전망치(매출 143억5000만달러, 순이익 주당 0.31센트)를 한참 밑도는 수치입니다.

반면 인텔을 쫓던 경쟁자 AMD는 이틀 앞서 발표한 실적 발표에서 “데이터센터 부문의 기록적인 성장에 힘입어 호실적을 냈다”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AMD의 올 2분기 순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881% 증가한 2억6500만달러(약 3600억원), 매출은 작년보다 9% 증가한 58억달러(약 8조원)입니다. AI 반도체 시장을 호령한 엔비디아도 작년 처음으로 매출에서 인텔을 역전한 데 이어 실적 격차를 키우고 있습니다. 경쟁사들이 GPU 기반 AI 하드웨어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사이, 인텔은 CPU 중심의 전략을 고수하면서 AI 가동에 필요한 고성능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데 한계를 보인 탓입니다.

◇ 위기의식 느낀 겔싱어 CEO, 대대적 쇄신 나선다

인텔이 AI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시장 기대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인텔 주가는 42% 넘게 하락했습니다. 이는 필라델피아 증권거래소 반도체 지수에서 두번째로 낮은 성적입니다. 24년 전 시총 기준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회사였던 인텔은 이제 100위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날 기준 인텔의 기업가치는 엔비디아의 21분의 1 수준입니다. 1970년대부터 세상에 없던 프로세서를 내놓으며 반도체 업계를 이끌어 온 ‘거인’ 인텔이 AI 시대 신기술에 대응하는 혁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처지로 쪼그라든 것입니다.

인텔의 대대적인 쇄신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입니다. 인텔은 2025년까지 자본 지출을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 이상 줄인다는 계획입니다. 당장 올해부터 새 공장을 짓고 장비를 들이는 데 쓰는 비용을 20% 이상 줄입니다. 3년 넘게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겔싱어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쉬울 것이란 환상은 없다”며 “여러분도 환상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를 “회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화의 일부”라고 강조했습니다. 시장에선 인텔이 이제라도 급진적인 조치를 취해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텔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는 인텔 수장의 기대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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