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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베트남 ‘대나무 외교’ 신화에 가려진 이윤지상주의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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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6년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포모사의 산업오염을 규탄하는 시위 모습. 시민들이 “우리는 바다·물고기·새우를 사랑한다. 포모사는 나가라”는 펼침막을 들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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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 하띤성의 붕앙 경제구역에 자리 잡은 포모사하틴스틸(이하 포모사스틸)은 2015년 말 대만 자본 포모사플라스틱그룹의 투자로 설립됐다. 한데 가동을 시작한 지 몇달 뒤인 2016년 4월 초, 베트남 중부 해안선 약 200㎞에 걸쳐 엄청난 규모의 해양오염이 발생했다. 약 115t에 이르는 물고기 수만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산호초와 맹그로브숲이 오염돼 바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 결과 베트남 어민 4만명이 생계 수단을 잃었고, 20만명의 삶이 위협받게 됐다. 무엇보다 이런 파괴는 지역사회에 식량과 보건 위기를 일으켰다. 조사 초기 포모사스틸 쪽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조사 결과 공장이 폐수 파이프라인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유출됐다는 점이 드러났다.







“나는 물고기를 선택한다”





2016년 4월29일, 쩐홍하 베트남 환경부 장관은 “매우 거대하고 심각한 환경 재해”였다며,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이틀 후 노동절에는 지역에서 수백명의 시위가 벌어졌고, 온라인에서는 ‘나는 물고기를 선택한다’를 뜻하는 ‘#ToiChonCa’ 캠페인이 벌어졌다. “베트남인들은 물고기와 새우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현대식 철강산업을 건설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포모사스틸 임원의 망언을 비판한 것이었다.



2016년 6월이 돼서야 포모사스틸은 독성 물질 유출 책임을 인정하고 주민들에게 5억달러(약 6800억원)를 배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포모사스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하노이와 호찌민시를 비롯한 베트남 전역에서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이유다.



베트남 정부는 줄곧 시위를 강력히 단속했고, 불과 두달 만에 500여명이 체포됐다. 이 사건이 ‘베트남판 체르노빌’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의는 계속됐다. 2016년 8월 중순에도 주민들은 죽은 물고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섰고, 끼아인현 인민위원회 청사까지 행진하면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시위를 이끈 응우옌탄랑 활동가는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양오염이 발생한 지 넉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생계가 불가능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깨끗한 바다를 누릴 권리를 요구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민들은 베트남 정부가 이 산업오염 범죄를 숨기거나 감싸려는 것 같다고 여겼다. 쌀 한 포대와 5만동(약 2700원)에 그친 정부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했고, 포모사스틸에 대해 강한 규제를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응에안 성당의 안토니 남 신부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범인을 은폐하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열린 일련의 시위에서는 “누가 베트남을 독살하기 위해 포모사를 데려왔나” “정부는 돈을 가져가지만, 인민은 재앙을 가져간다”는 구호가 적힌 펼침막이 등장했다. 이후로도 주민들의 피해보상 요구 시위는 1년 넘게 계속됐다. 여러 어촌에서는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의 지역주민 시위가 끝없이 열렸고, 그때마다 당국은 탄압으로 일관했다. 몇몇 마을에서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는데, 정부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결국 2017년 2월, 베트남 정부는 오염 위험이 높은 사업은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찐딘중 부총리는 환경 규정을 개정하고, 투자와 건설 단계에서 심사와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년 가까이 지속된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이 이룬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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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외교 신화’의 뒤편엔





하지만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2017년 1월 22살 활동가 응우옌반호아가 체포됐고, 5월15일에는 “경찰 업무를 방해”하고, “민주적 자유를 남용해 국익을 침해”한 혐의로 34살의 노동운동가 호앙득빈이 체포됐다. 그는 2014년 공단 노동자들의 반중 시위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했고, 포모사 산업오염 피해보상 운동에서는 ‘중부지역 어부연합’을 결성하고 천주교 신자 공동체와 연대했다. 체포 당일 베트남공산당 응에안성위원회 기관지는 호앙득빈이 “페이스북 계정에 정권을 비판하는 자료를 자주 게시하거나 공유”했으며, “다원주의와 다당제를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2017년 11월 베트남 법원은 응우옌반호아에게 ‘시위 선동’ 및 ‘반국가적 선전’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했고, 2018년 2월에는 호앙득빈에겐 14년형을 선고했다. 포모사 산업오염 사고에 맞서 투쟁하다 체포돼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31명에 이른다.



지역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저항은 포모사스틸이 저지른 끔찍한 재해를 저지하고, 이것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저항에 탄압으로 응수했다. 응에안성 정부가 내뱉는 수사는 노동자 파업에 대한 한국 정부나 보수언론의 비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련의 행동이 “국익을 침해”하고, “재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만약 ‘국익’이 온전히 그 나라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가리킨다면, 이들은 베트남의 국익을 해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옹호했다. 국익을 해친 것은 이윤을 위해 오염물질을 마구 방출하고, 이에 대한 규제 없이 투자를 수용한 지방정부였다. 이들이 누구의 재산을 파괴했다는 것일까? 주민들의 저항이 자본가들에게 큰 손실을 주긴 했다. 그렇다면 베트남공산당은 자국 민중 대신 자본가들의 재산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변질된 걸까?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사회에 대한 소식은 시장 동향과 부동산 투기 시장을 중심으로 전달된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한 사죄나 삼성전자 현지 공장의 산업오염 피해 노동자들의 폭로와 관련된 소식이 알려지긴 했지만, 베트남 역사와 동시대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대해선 알기 어렵다. 하지만 진실의 인과관계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식민화하고 있으며, 결코 ‘후진국=권위주의→선진국=민주주의’식의 단순하고 제국주의적인 도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 어떤 국가에서 벌어지는 저항을 이해하려면 탈식민주의적 시선을 버려선 안 된다.



2023년 베트남은 미국 대통령과 중국 국가주석을 자국에 초청한 유일한 국가였다. 베트남은 중국처럼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이지만, 동시에 상당한 외국자본을 유치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 베트남은 삼성전자, 인텔, 엘지전자, 폭스콘, 샤프, 혼다, 캐논 등 대형 제조업 자본이 진출해 있는 거대한 ‘글로벌 공장’인데, 이들 자본은 하나같이 미-중 분쟁의 폭풍우에서 비켜서 있길 원한다. 그 결과, ‘대나무 외교’라 명명되는 베트남식 외교는 일종의 신화가 됐다. 하지만 대체 누구의 신화인 걸까? 자본과 국가권력의 착취와 억압을 통한 이윤 지상주의의 신화는 아닐까?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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