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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상속세가 만든 어떤 격차 [뉴노멀-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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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3년 7월28일 대만 신주에서 티에스엠시(TSMC) 글로벌 연구개발센터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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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 연쇄창업가



최근 대만을 찾는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대만 경제가 순풍에 돛단배처럼 질주하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대만 증시가 한국을 확실히 앞지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양국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이 몇백조원 단위로 그 격차가 벌어지는 형국이다. 대만 경제의 약진을 티에스엠시(TSMC) 독주체제, 다양성 부재 등으로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다. 얼핏 들으면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티에스엠시만 독야청청하는 게 아니라, 반도체 설계부터 파운드리, 다운스트림 서버 제조 분야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에이아이(AI)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이 생태계에서 여러 강소기업이 약진하며 젊고 도전적인 기업가들이 글로벌 시장의 여러 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현장의 얘기까지 더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만 정부와 업계는 티에스엠시 성공 모델을 바이오 분야로 확대, 재현하는 도전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반도체, 전자부품 일색이라는 산업 포트폴리오의 한계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시도다. 반도체(Semi-conductor)를 바이오(Biomedical)로만 바꾼 티비엠시(TBMC)는 40여년 전 모델 그대로 지난해 설립됐다. 1980년대 말 대만 국가개발기금의 초기 투자,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의 시설 및 인재, 글로벌 전자기업 필립스의 파트너십이라는 삼각체제로 티에스엠시가 설립되었듯이, 이번에는 필립스 대신 미국 샌디에이고의 첨단 바이오 의약품 기업 내셔널 리질리언스로 해당 분야 선수 교체만 이뤄졌을 뿐이다. 올해 초 모집을 시작한 시리즈에이(a) 투자유치에는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전세계에서 애초 모집액수를 훨씬 웃도는 2천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반도체에서의 성공 모델을 바이오 분야로 이식한다는 티비엠시의 기획은 낯설지 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발걸음을 떼고 앞서가고 있지만 과연 ‘삼바’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티비엠시를 저만치 따돌리며 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회계부정 의혹에 휘말렸던 지난 몇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시작했던 삼성전자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단의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승계 작업에 매달리게 하는 사이, 티에스엠시는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본업에 매달리게 하며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포착하고 앞서간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만에는 없고 한국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으로 위력을 떨치는 상속세가 만들어낸 차이다.



한국의 재벌 기업은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승계기술자로 만들며 사실상 자신들이 내야 할 엄청난 상속세를 수많은 개미들이 분담하도록 만들어 왔다. 한국의 상속세가 징벌하는 대상은 재벌 일가가 아닌 애먼 개미투자자들이었던 셈이다.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이라는 걸 남들은 다 아는데 우리만 외면한다. 대만은 기업들이 개미 등골을 뽑아 상속세를 납부하며 생색내는 거대한 역할극 무대를 만드는 데 골몰하지 않고 본업에 집중할 수 있게 했고 그것이 기업가 정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상속세 세율을 얼마로 조정하고, 조세 정의가 어떠니 논박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본질을 회피하는 일이다. 큰 물고기들은 빠져나가고 잔챙이들만 걸려드는 불공정한 상속세 게임 대신, 기업가 정신을 흘러넘치게 하고, 기업을 통해 만들어진 성과가 소액주주들에게까지 투명하고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정의롭고 미래지향적이다. 상속세 따로, 밸류업 따로, 산업정책 따로 식이어선 곤란하다. 상속세 납부를 면죄부 삼아 온갖 방식으로 개미들을 착취하는 행태, 인재들을 편법기술자로 전락시키는 기업문화가 일소되지 않는다면 대만과의 거리는 머잖아 ‘초격차’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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