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관훈 토론회 나온 일본대사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아베 총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20회>]

벳쇼 고로 대사, 이례적으로 토론회에 나와 소신발언

“아베 총리, 무라야마 담화 변경 안 할 것” 이라고 강조

5일 후 아베가 ‘무라야마 담화’변경 시사해 외교부에 초치돼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로 널리 알려진 관훈 토론회는 질문이 까다롭기로 유명합니다. 중견 언론인 단체인 관훈클럽이 1977년부터 주최하는 이 토론회는 주요 사안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토론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이 1985년 관훈토론회에 초청됐을 때 “한편 인정받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매서운 시험관들 앞에서 구두시험을 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관훈클럽은 국내 주요 인사들외에도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가 서울에 파견한 대사들을 불러 토론회를 가지려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관훈 클럽 임원을 하면서 주요국 대사들을 토론회에 불러내려 했지만,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조선일보

2013년 4월 17일 관훈 토론회에서 벳쇼 고로 주한 대사가 발언하고 있다. 맨 왼쪽이 이하원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 가운데가 조용래 국민일보 논설위원(현 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 대사들이 소극적이었습니다. 47년의 관훈 토론회 역사에서 주한 일본 대사가 나온 것 두 차례에 불과합니다. 1984년 마에다 도시카즈(前田利一) 대사와 2013년 벳쇼 고로(別所浩郞) 대사만 나왔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벳쇼 대사가 초청된 관훈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했습니다. 2013년 4월 17일 관훈 토론회에서 벳쇼 대사의 반경 3m 내에 3시간 동안 있었습니다. 패널 중의 한 명으로 2시간 가까이 토론하고, 점심도 프레스센터 20층의 무궁화실에서 함께 했습니다.

벳쇼 대사는 2012년 10월 서울에 부임 전에 주미대사관 참사관, 북동아과장, 총합외교정책국장, 외무심의관을 역임 후, 사무차관 물망에도 올랐던 엘리트 외교관입니다. 가까이서 관찰한 그는 실력과 용기를 갖춘 외교관이었습니다.

◇ 일본 대사의 자발적인 무라야마 담화 언급

그는 토론회 모두(冒頭)에 통역시간을 포함, 40분간 연설을 했습니다. “한일관계에 대한 진심을 알리고 싶다”며 긴 연설을 했습니다. 벳쇼 대사는 “(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한국을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정의한다. 이런 나라에 부임하게 돼 기쁘다. 하지만 작년은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굉장히 어려운 해였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작년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있었던 2012년을 말합니다.

그는 “일한(日韓) 관계는 (동북아) 지역, 전 세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이 제 신념이다. (영토와 과거사 같은) 개별적인 문제가 이런 중요한 관계 전체를 해치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하더니 “역사문제에 대해 한 마디만 더하겠다”며 예상치 못했던 말을 했습니다.

“1995년의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내각회의에서 정식으로 결정된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이 자리에서 일부 인용하겠다. ‘식민지 지배로 인해서 다대(多大)한 손해를 주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이 부분은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는 “무라야마 이후의 내각은 이런 공식 입장을 일반인에게 말하고 있으며 아베 내각도 역대 내각과 같은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2013년 3월 28일 김규현(오른쪽) 외교부 차관(국가안보실 1차장, 국정원장 역임) 이 벳쇼 고로 주한 일본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독도와 관련한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토론을 위해 벳쇼 대사와 나란히 앉아 있던 기자는 그가 자발적으로 일제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거론한 데 대해 놀랐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 정부의 종군위안부(성노예)에 대한 관여를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와 더불어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사과한 것입니다.

그가 무라야마 담화 계승 문제를 언급한 것은 배경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에 당선될 때부터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를 모두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국내외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미국도 이에 대해선 우려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 아베 내각이 출범하자 스가 요시히테(菅義偉) 관방장관은 “(역사 문제에 대해) 역대 내각의 생각을 이어가겠다”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여진은 계속됐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2월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 정부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와 관련, “군이 직접 나서서 위안부를 모집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언하며 자신의 소신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벳쇼 대사는 관훈 토론회에 나와 아베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지킬 것이라고 확언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토론회의 첫 질문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벳쇼 대사께서 무라야마 담화를 인용해 준 것을 감사드린다. 대사의 오늘 말씀을 대사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든 정치인이 공유하길 기대한다.”

그런데, 이날 무라야마 담화 계승에 대한 벳쇼 대사의 ‘다짐’과 기자의 ‘기대’가 허상(虛像)이 돼버린 데는 불과 1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 아베 “무라야마 담화 그대로 계승않는다”

아베 총리는 벳쇼 대사의 관훈토론회 5일 후인 4월 22일 일본 의회에 출석했습니다. 여기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전후 50년에는 무라야마 담화, 전후 60년에는 고이즈미 담화가 나왔기에 전후 70년(2015년)을 맞아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 후, 더 큰 논란을 일으킨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망언(妄言)이 나왔습니다.

조선일보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짧게 인사 나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로이터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사와 관련, 숱한 망발(妄發)을 해 온 그가 말한 ‘미래지향적인 담화’는 100%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새 담화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흐리고, 사죄의 수위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지난 9일 도쿄에 부임한 박철희 주일대사는 당시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자격으로 “무라야마 담화는 아시아 전체와 관련된 것인데 이를 수정한다는 것은 ‘역사의 반성에 기초한 전후(戰後) 발전’의 중요한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벳쇼 대사는 2000년 4월부터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외교 비서관으로 활동할 때부터 아베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2002년 당시 관방 부장관이던 아베와 함께 고이즈미 총리를 수행해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지요.

이런 인연으로 그가 아베 총리의 신임이 두터운 외교관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베 내각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이라고 예견한 벳쇼 대사는 이를 부인한 아베 총리때문에 하루아침에 ‘고개 숙인 남자’가 돼 버렸습니다.

아베 총리의 망언 때문에 벳쇼 대사는 4월 25일 외교부로 초치(招致)됐습니다. 이때 그는 눈을 질끈 감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부임한 지 5개월 만에, 관훈토론회에 나온 지 1주일만에 자신이 했던 발언이 아베 총리에 의해서 부정됨에 따라 아무런 정치적 역할을 못하는 ‘식물 외교관’이 될뻔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후 아베 총리는 자신의 무라야마 담화 관련 발언에 대한 반발이 국내외에서 커지자 공식적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한 과거의 입장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아베 총리의 진심은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국내외에 확산됐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직접적인 사과보다는 이전 정부의 사과를 반복하는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미래 세대가 과거에 대한 사과를 계속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조선일보

2017년 8월 16일 조태열 유엔 주재 한국대사(현 외교부 장관)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라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앞서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왼쪽), 벳쇼 고로 주유엔 일본대사와 함께 3국 대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유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특명전권대사가 주재국에서 공개적으로 한 발언을 1주일 만에 사실상 거짓말로 만들어 버린 지도자는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벳쇼 대사는 무라야마 담화를 어떻게 해서든 흠집내려는 아베의 진심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 왜 공개 토론회에서 ‘아베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 계승’을 확언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베 총리와 본국 정부에 ‘무라야마 담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전달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벳쇼 대사는 한일관계 개선에 진심이었으며 다른 대사들이 회피하는 관훈 토론회에도 나오는 용기 있는 대사였지만, 이후 그의 발언이 큰 무게감을 갖지 못한 것은 안타깝습니다.

미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 신임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달 부임한 데 이어 박철희 신임 주일대사도 9일부터 도쿄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두 대사가 용기있게 상대국의 토론회에 나가고, 양국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파견한 대사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은 없기를 기대합니다.

[P.S.]

1. 벳쇼 대사는 한국 근무를 마치고 2016년 주유엔대사로 부임했습니다. 벳쇼 대사는 유엔에서 조태열 대사(현 외교부장관), 니키 헤일리 미국 대사와 긴밀히 공조하며 대북 제재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습니다.

2. 벳쇼 대사는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의 구순(九旬) 기념 문집인 ‘공로명과 나’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남겨 놓았습니다. 공 전 장관의 인품과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벳쇼 대사를 잘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해 소개합니다.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공로명 장관이 몸으로 실천해온 프로 정신입니다. 이는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외교관의 귀감이라고 할만합니다. 공 장관의 큰 족적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국제관계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요즘, 매우 의미있는 생각합니다. 나는 공 장관보다 22살이나 어리기 때문에 카운터파트로서 직접 만나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내가 일본 외무성에서 한국을 담당하는 북동아시아 과장에 내정되었을 때, 공 장관은 마침 주일 한국대사로 계셨습니다. 대사와 과장이라는 격의 차이는 있었지만, 고명한 공로명 장관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대단히 기뻤습니다. 아쉽게도 공 대사는 내가 과장에 취임하기 직전인 1994년 12월, 외교부 장관으로 발탁돼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영전을 축하하면서도 직접 만나 뵐 기회가 사라져 아쉽게 생각했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인품을 접할 기회는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일찍 찾아 왔습니다. 공 장관이 일본을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외무장관이라는 새로운 입장에서 일본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공 장관이 바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나는 담당과장으로서 의전상 배웅을 하기 위해 숙소를 찾았습니다. 특별히 세리머니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공 장관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바로 차로 향했습니다. 차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서, 내가 한국대사관 직원들과 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던 바로 그때, 갑자기 차들이 멈춰 섰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주위가 조금 웅성거릴 때, 공 장관이 차에서 내려 아, 글쎄 나를 향해 곧바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금 긴장해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공 장관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게 손을 내밀더니 “차가 떠날 때까지 벳쇼 과장의 모습을 보지 못해 실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의전을 넘어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는 후배에게도 따뜻한 마음으로 곧바로 접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이하원 외교담당 에디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