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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윤, 3년 전엔 ‘통신 사찰’ 구속하라더니…뻔뻔한 검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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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검찰청 전경. 김혜윤 기자


지난 8월2일 아침에 1301 발신 번호로 ‘통신 이용자 정보 제공 사실 통지’라는 제목의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대충 살펴보니 ‘조회기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라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스미싱’(문자메시지를 이용한 휴대전화 해킹)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삭제했습니다.



이틀 뒤 검찰이 통신정보를 무더기로 조회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아차 싶어서 휴대전화 문자 휴지통에서 문자를 찾아 복원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귀하의 통신 이용자 정보를 아래와 같이 제공받았으므로 동법 제83조의2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이를 통지합니다.



조회기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문서번호: 2024-87
조회 주요 내용: 가입 정보(성명, 전화번호)
조회 사용 목적: 수사
제공받은 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 제1부
제공 일자: 2024.01.04
문의처: 02-530-4924
통지유예 안내: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 정보제공 이후, 일정 기간 통보가 유예될 수 있습니다.



* 문의사항은 문의처 번호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발신번호 연락 불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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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검찰이 도대체 내 통신정보를 왜 조회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한겨레 정혜민·최성진 기자가 쓴 “‘윤 명예훼손 수사’ 검찰, 야당·기자 통신정보 무더기 조회” 기사를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정도를 포함한 ‘통신 이용자 정보’와 착발신 통화 내역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통신사실 확인 자료’(통신기록)는 다르다고 했습니다. 통신 이용자 정보는 검찰이 마음대로 확인할 수 있지만, 통신사실 확인 자료는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사 대상자의 통화 내역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입자를 조회한 것이다.”



“사건과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통화 상대방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했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의) 수사 대상자가 언론인들이다 보니, 통화 상대방 중에 언론인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수사에 불가피” 대 “사찰은 불가”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기분은 더 나빴습니다. 검찰의 수사 대상자 누군가와 내가 통화했다는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수사기관이 내 통신정보를 들여다본 것 자체가 기분 나쁜데,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관련으로 조회했다고 하니까 기분이 아주 더러웠습니다. 검찰의 이번 통신정보 조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한겨레·동아일보 등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포함됐습니다. 심지어 국민의힘 중진 의원도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 중진 의원은 마음이 상해서 동료 의원들에게 검찰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한겨레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앞줄 가운데) 등 언론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8월5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무차별적인 통신 이용자 조회를 비판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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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정보 조회를 당한 사람은 누구나 기분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사 기관의 통신정보 조회를 둘러싼 논쟁은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범죄 수사를 위해 기초 사실 확인은 불가피하다는 당위와, 국가가 국민을 사찰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당위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정권을 잡고 있는 쪽에서는 불가피론을 펴고, 반대쪽에서는 불가론을 폅니다. 정권이 바뀌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언론마저 이러한 정파적 관점에 휘둘립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세월호 유가족과 기자, 야당 의원들의 통신정보를 무더기로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민주당은 “불법적인 대국민 사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21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 경찰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김건희 여사, 국민의힘 의원들의 통신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불법 정치사찰”이라고 펄펄 뛰었습니다. 공수처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 자체 예규를 법처럼 남용





이번에 불거진 검찰의 통신정보 조회는 다시 민주당이 “윤석열 검찰공화국의 ‘빅 브러더 프로젝트’ 통신 사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민주당의 태도를 2021년과 비교해 “내로남불 종목의 국가대표”라고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내로남불의 ‘끝판왕’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봐야 합니다. 2021년 12월3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대구 선거대책위 발대식에서 이렇게 ‘격노’했습니다.



“(공수처가) 많은 언론인들 통신 사찰하고 우리 당 의원들 현재 확인된 것만 60~70% 통신사찰을 받았다. 저도, 제 처도, 제 처 친구들, 제 누이동생까지 했다. 이거 미친 사람들 아닌가?”



“의원과 언론인 사찰하면 안 된다. 보좌관 사찰만 해도 원래 난리 나는 것이다. (공수처는) 심지어는 우리 당 단톡방까지 털었다. 결국 다 해먹은 거 아닌가? 공수처장 사표만 낼 게 아니라 당장 구속해 수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겨레

2021년 12월30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정보 조회를 강하게 비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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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검찰의 통신정보 조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힘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검찰은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찰할 거면 통지를 했겠나”라고 피해자들의 화를 돋우고 있습니다.



통신정보 조회 통지는 검찰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수사·정보기관이 영장 없이 이용자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2016년 5월 헌법소원이 제기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이용자 정보를 수집하고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에 사후통지 의무 규정을 신설해 올 1월부터 시행한 것입니다.



참여연대가 검찰의 해명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긴급 기자 설명회를 8월8일 오후에 열었습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 관련 수사를 2023년 9월경 시작했다. 법 시행 이전 조회한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검사의 수사 개시에 대한 지침’(예규)을 근거로 이번 수사를 하고 있다. 비공개 예규는 검찰 수사의 직접 근거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에 근거한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도 근본적으로 근거가 없다.”



“개인의 휴대전화번호와 이름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해서 분석하면 사회관계망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이런 정보를 누적하고 있는 검찰이 주요 정치인과 언론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활용한다면 이는 정확히 사찰이다.”







사전에 법원영장 받게 해야





저는 참여연대의 반박이 구구절절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논란에 대해 이른바 보수 성향 언론과 여당의 정치인들도 검찰의 무차별적 통신정보 수집을 비판하며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동아일보는 지난 8월5일치 1면에 “검, 야 의원-언론인 등 ‘통신조회’ 파장” “민주당 ‘전방위 사찰’ 검 ‘적법 절차’”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돋보이게 실었습니다. 4면으로 이어진 기사는 “검, 피의자도 아닌데 전방위 통신조회…7개월 돼서야 통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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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8월6일치 신문에도 “검, 의원-기자에 일반인까지 통신조회…구체적 이유-규모 안 밝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동아일보 기자 최소한 5명이 통신조회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8월6일치 관련 사설 제목은 “검찰, 야와 언론 무차별 통신조회…3년 전 윤 ‘미친 짓’이랬는데”였습니다. 8월9일치 신문에는 “검 언론인까지 무차별 통신조회…미에선 어림도 없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중앙일보도 8월7일치 신문에 “언론인·정치인 전방위 통신조회…검찰이 불신 키웠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검찰 ‘적법’ 해명에도 통신 비밀 침해 논란 확산” “7개월 뒤 늑장통보도 문제, 제도 개선 서두르길”이라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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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인 장동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8월6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용자 정보 조회부터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며 “다만 다른 영장보다는 요건을 좀 완화해서 심사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사 출신으로 5선 중진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8월7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법원에 의한 통제, 영장주의는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전면적으로 금지할 것인지 검찰의 수사 목적을 위해 일부 놔둘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2021년 통신정보 조회 사건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최근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통신자료(가입자 정보) 조회’ 논란 등을 빚게 돼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 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이번 통신정보 무더기 조회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이 공식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사기관이 통신정보 조회를 하려면 반드시 법원의 통제를 받도록 국회가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왜냐고요? 검찰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현 검찰은 ‘동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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