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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차라리 회를 떠 다오!”...흡혈귀에 피빨리는 연어의 몸부림 [수요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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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도 없는 원시적 물고기 ‘무악류’

아가미 구멍 7개 뚫린 ‘칠성장어’와 꼼장어로 친숙한 ‘먹장어’

150개 이빨돋은 원형 이빨로 물고기 피빨아먹으며 죽이는 공포의 칠성장어

가물치, 드렁허리에 앞선 ‘외래유해종 대선배’로 미국 하천과 호수 점령

털달린 젖먹이짐승, 깃털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새, 비늘로 덮인 파충류와 끈적한 피부로 숨쉬는 물뭍동물, 여기에 물속 세상을 장악한 물고기까지. 척추동물을 이루는 5대 분파는 이처럼 저마다 확고한 특징이 있는데요. 그중 진화정도가 가장 뒤처진 물고기에겐 다른 4대 분파에 있는 두가지가 없어요. 울음통과 눈꺼풀입니다. 울부짖을 수가 없고, 눈을 깜빡일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단이 애당초 없다는 거죠. 이 두 개의 결핍은 인간의 식생활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소리를 낼 수 없고, 무표정한 물고기들을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잡고 요리해먹으면서 조금의 측은지심도 느끼지 않게 됐거든요. 그런데 이런 물고기들이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몸부림이예요.

소리내지 못하고 눈물을 쏟지 못하는 대신 온몸을 꾸불텅대고 비트는 모습을 보면, ‘아 놈이 고통스러워하고 있구나’라는게 대번에 느껴질 정도죠. 물고기가 몸부림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보여주는 짧은 동영상이 최근 동물 전문 소셜미디어 1Minute Animals에 공개됐어요. 강과 바다를 오가며 용맹스럽게 살아가는 연어와 그 사촌인 송어들이 그만 흡혈마귀에게 몸뚱아리를 내주고 산채로 살이 찢기고 피를 빨리는 고통의 순간을 몸부림이 생생하게 담겨있죠. 연어와 송어를 아우르는 연어류는 작은 물고기나 갑각류들에게는 공포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동시에 상위 포식자에게는 소중한 영양분을 제공합니다. 알과 정자를 한가득 품고 고향 개울로 돌아가는 길목에선 불곰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잽싸게 낚아채 소시지 비닐을 까듯 산채로 비늘부터 벗겨내며 허겁지겁 먹어치우죠. 곰의 발톱과 이빨을 피해 번식의 소임을 다하고 나면 기진맥진해 죽어가는 몸뚱아리는 흰머리수리의 차지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낚이거나 양식이 돼 훈제나 덮밥용 생살, 횟감으로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들보다 더 섬뜩하고 악랄한 연어류의 천적이 있으니 바로 칠성장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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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장어에게 당한 연어의 모습. 살이 패이고 피가 빨린 자국이 선연하다./United States Fish and Wildlife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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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나 사람에게 잡히면 순식간에 몸뚱아리가 해체되니 고통의 순간을 최소화할 수는 있죠. 이 칠성장어라는 놈이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는 순간 연어는 생살이 야금야금 찢겨나가고 피와 체액이 스멀스멀 몸을 빠져나가는 지속적인 고통을 장시간 겪으며 죽어야 하거든요. 빨리 혼이 빠나가고싶은데 그것마저 제 뜻대로 안되니 정말 죽지 못해 죽을 맛이란 표현이 이럴 때 딱 어울려보입니다. 연어의 극한의 몸부림에서 극강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그 몸부림이 이렇게 외치는듯도 해요.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내 몸으로 회를 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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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피를 빨아먹던 칠성장어. 분리해놓으니 연어 몸뚱아리에 거대한 상처가 보인다./Minnesota Stat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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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멀쩡한 연어와 송어 등을 서서히 나락으로 보내는 잔혹한 뱀파이어 역할을 하는 흡혈어 칠성장어는 대체 어떤 족속일까요? 흔히 알려진 물고기의 분류체계는 이렇습니다. 물렁한 뼈를 가진 상어와 가오리 등 연골어류와 딱딱한 뼈를 가진 대부분의 물고기, 즉 경골어류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다는 거죠. 그런데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갈래가 또 하나 있어요. 심지어 이들을 과연 물고기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지 논쟁이 벌어질정도로 원시적 특성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칠성장어가 속해있기도 한 이 갈래를 턱이 없다고 해서 무악(無顎)류라고 하고, 입이 둥굴게 생겼다고 원구(圓口)류라고도 해요. 사실 ‘무악’과 ‘원구’는 인과관계이기도 합니다. 턱이 없다보니 입이 둥글게 됐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확대사진을 한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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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없고 150여개의 이빨이 돋아있는 무악류 칠성장의 입. /Ted Lawrence/Great Lakes Fishery Com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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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둥근 원안에 대략 150개의 날카로운 톱니 같은 빨판이 돋아있어요. 절단면같이 생긴 이 주둥이를 날렵한 유선형 몸매를 지닌 큼지막한 연어나 송어의 몸에 부착시키는 순간 게임의 향방은 결정됐습니다. 기하학적 문양같기도 한 주둥이 가운데서 톱니 같은 혀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살속을 파고들어가면서 포식이 시작됩니다. 이 때 물고기의 몸을 부수고 피를 빨아들이는 칠성장어의 흡입력이 진공청소기 파워의 일곱배에 육박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이 섬뜩한 무기와 파워로 핵무장한 흡혈어를 떼어 수 있는 방법은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흡착과 함께 은근하고 느릿해서 잔인한 죽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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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는 칠성장어를 정면에서 본 모습.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괴수를 연상시킨다./Washington State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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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장어는 우월한 피지컬에 걸맞는 끈질긴 생존력도 자랑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해묵은 외래유해종일 정도예요. 본디 대서양 연안을 터전으로 잡고 있던 놈들이 19세기부터 강의 지류를 따라 미국 내륙으로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 결과 오대호를 이루는 다섯개의 거대 호수를 완전히 장악했어요. 생김새도 크기도 피맛도 제각기 다른 물고기들이 가득한 5대 호 물속세상은 칠성장어 입장에선 별 다섯개 짜리 호텔의 부페식당이자 추억의 노포입니다. 연어·송어·명태·청어... 그야말로 골라골라 잡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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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꼼장어로 친숙한 먹장어가 심해 바닥에서 움직이는 모습./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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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장어는 훗날 아시아에서 들어와 미국 생태계 파괴자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가물치드렁허리에게 길을 터준 선구자 격인 ‘외래종 대선배 물고기’예요. 오대호 토종 물고기들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흡혈어 칠성장어를 퇴치하려는 1세기 이상 꾸준히 전개돼왔지만 불행히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번식철이 되면 한배에 8만개나 되는 알을 쏟아내는 놈들을 퇴치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연구진이 칠성장어를 꺼내 살펴보는 동영상을 한 번 보실까요? 괴물의 풍모가 한껏 드러납니다.

눈뒤로 줄줄이 뚫려있는 일곱개의 아가미구멍 때문에 칠성장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흡혈어에겐 닮은 듯도 하고 닮지 않은 듯도 한 친척이 있습니다. 바로 먹장어예요. 서민 음식으로 사랑받는 우리나라 꼼장어도 먹장어 집안 소속입니다. 칠성장어와 먹장어의 관계는 맹금류로 치면 수리(eagle)와 대머리수리(벌처·vulture)의 관계와 빼닮았다고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칠성장어가 수리와 같이 살아있는 사냥감을 쫓는 헌터(hunter)의 위치에 있다면, 먹장어는 죽은 바다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스케빈저(scavenger)와 빼닮았다는 면에서 대머리수리에 빗댈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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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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